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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무교회 신앙과 안식일 엄수

by 안티고네 2001. 7. 8.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나 우리 사이에 무교회 신앙 곧 무집회주의로 알려지는 듯한 측면이 있다. 이는 무교회 신자로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교회 신자 편에서는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마 무교회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무교회주의 창시자로 알려진 일본의 우치무라(內村)가 소년 시절부터 청교도적인 엄격함으로 일생 안식일을 엄수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개 학생 시대에는 우인(友人)들과의 집회, 청년 시절에는 가정 집회, 장년 시절에는 빌딩에서의 공개 집회, 그리고 말년에는 자신의 강당에서 이를 엄수했다. 그리고 명칭은 대개 성서연구회로 했다.

한번은 어느 독일인 목사가 그의 집회에 참석하여 당신의 집회가 교회의 예배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의 집회는 성서연구회로서 이른바 예배는 아니며, 나의 예배는 나의 생활 전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이것이 무교회 신앙, 그리고 무교회 집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가 이렇게 교회 예배를 성서 연구로 돌린 것은, 오늘날 교회가 신자의 교회 가입이나 예배 내지 의식의 참가 등을 믿음 또는 구원과 동일시함으로써, 신앙 생명으로나 도덕적으로 현실 생활과 분리되어, 아무런 힘없는 신앙, 거짓 신앙으로 떨어진데 대한 일대 개혁을 하고자 함이었다.

루터의 개혁이 최소한의 제도로서 남겨놓은 교회 제도와 의식 등은 오늘날 개신교의 생명을 고갈시키는 치명상이 되고 있다. 우치무라가 예배를 성서연구로 대신한 것은 기독교의 제도나 의식적인 면을 완전히 지양하고, 다만 성서의 말씀과 진리로써 우리의 믿음과 생활을 성화(聖化)하고 예배화 하려는 것이었다. 루터의 개혁 신앙을 철저히 재개혁하고, 나아가 완성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무교회의 주장은 제도적인 서양 기독교에 대한 정신적 개혁에 다름 아니다.

무교회 신앙은 절대 무집회주의는 아니다. 도리어 성경에 의한 안식일 엄수야말로 저의 신앙 생명인 것이다. 과연 교회 제도에 포로로 잡혀 있던 안식일을, 성경의 생명과 진리로써 우리의 전 생활을 성화(聖化)할 수 있는 축복의 날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안식일 성수(聖守) 역시 구약의 제사, 의식, 성전 제도의 모방이 아니고, 민중적인 성서 중심의 시나고그 집회와 관련된 것이었다(「사도행전」 16: 13).

무교회의 성경 집회 역시 교회의 의식화, 제도화를 지양(止揚)하고, 기독교신앙의 만인사제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무교회주의자는 단독으로라도 성경을 중심으로 실로 사제의 자격으로 성일(聖日)을 엄수해야 한다. 회당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수가 많아야 할 것도 없고, 꼭 선생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도 일요일 오전 한 두 시간이면 족하다. 이미 있는 집회에 참가해도 될 것이고, 가정에서 부부 또는 가족 중심으로 또는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찬송과 감사로 성경을 윤독하고 감상을 말하고, 또는 성경의 뜻을 푸는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아니, 김교신 선생의 전집을 윤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여간 나는 성일 엄수 없는 무교회 신앙을 생각할 수 없다. 요사이 성일 없는 소위 무교회적이라는 ‘자유 신앙’이 속속 파멸 상태에 빠져가는 것을 보고 더욱 이를 깊이 느끼게 된다.


<성서연구> 제82호(1959년 5, 6월)



"그렇다, 이것이 무교회 신앙, 그리고 무교회 집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가 이렇게 교회 예배를 성서 연구로 돌린 것은, 오늘날 교회가 신자의 교회 가입이나 예배 내지 의식의 참가 등을 믿음 또는 구원과 동일시함으로써, 신앙 생명으로나 도덕적으로 현실 생활과 분리되어, 아무런 힘없는 신앙, 거짓 신앙으로 떨어진데 대한 일대 개혁을 하고자 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