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무력과 부패와 타락을 말하면, 목사 혹은 교회에 열심 있다는 이의 대답은 거의 다 일률적으로, "교회도 사람이 모인 것이니 할 수 없다" 혹은 "그런 교회라도 없기보다는 낫지 않은가?"하는 대답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열린 입이 닫혀지지 않을 지경이다. 그래서 결국 용기를 내어 "그렇다면 차라리 없기보다 못하지 않은가" 하면, 그들은 또 아주 정색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성령이 임하고 계시가 임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에 대해 그런 모독의 말이 어디 있어?" 하며 나무란다.
나는 이를 듣고 '없기보다 나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성령과 계시가 임하는 교회'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아, 과연 예수가 없기보다 나은 정도의 교회를 만들려고 했던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그런 것일까? 성령이 임하고 계시가 임한 교회가 그럴 수 있을까? 이런 교회가 과연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목사는 반성하고 신자는 스스로 속지 말 것이다.
예수는 가장 열심 있고 경건한 종교 계급인 바리새 교인에 대해 "회칠한 무덤, 독사의 종류, 소경 된 인도자여, 너희들은 신자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헤매고 다니지만 얻으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했다. 교회당 문이 지옥문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목사면, 장로면 다 성직자, 성도인가? 천만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베드로에 대해 그 자리에서 "악마야 물러가라"고 한 예수이다.
도대체 올 봄 들어서만 해도 감리교 연회에서 폭발된 기독교회의 추태와 죄악은 무엇인가? 동대문 교회의 난투극은 무엇인가? 이래도 과연 성령의 계시가 임한 교회이고, 세상을 구하는 교회인가? 그들의 교회와 그들의 신자만을 지옥을 끌고 가는 정도라면 그래도 참고 용서할 수 있다. 요사이 군정(軍政) 이래 전 민족을 망치고 국가를 망치는 자들이야말로 '없기보다 나은 기독교회'가 길러낸, 사회 곳곳에서 죄를 범하는 신자들 아니던가? 이번 총선거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모 정당의 간부들은 거개가 기독교의 목사들이 아니던가?
여러분, 나의 이 말을 너무 심하다고 하지 말라. 물론 내가 기독교인더러 천사같이 되란 말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자가 사람 이하 수준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고사하고 먼저 사람다운 사람, 성령이나 계시보다도 상식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민족을 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구해야 하고, 세상을 구하기 전에 먼저 교회를 바로 세워야 한다. 회개란 방향 전환이고, 성령이란 하나님의 능력이고, 신앙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이고, 속죄란 죄에서의 자유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 사람 이상으로 양심과 도덕으로 정의를 행하고, 사랑을 퍼뜨리고, 명예와 욕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자녀로 평화와 기쁨과 생명 속에서 살 수 있다. 신자는 없어도 좋을 교회인으로 살 것이 아니고, 세상을 이긴 예수와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요한 16: 33, 로마 8: 16).
<성서연구> 제44호 (1954년 4·5월)
소쇄원(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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