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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그리스도와 겸손

by 안티고네 2001. 2. 8.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이들 모두가 예수의 이름 아래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 6-11)

성경 중에서도 기독론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특성은 겸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격과 기독교의 중심을 사랑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겸손이야말로 이의 특징이자 중심인 것이다. 바울의 도덕론에서도 대개 겸손이 사랑 앞에 놓여 있다(로마서 12: 3-10).

겸손의 반대는 곧 교만인데, 이것은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 즉 신앙과, 사람에 대한 태도 즉 사랑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천사장 루시퍼의 반역도,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도 다 이 교만에서 발했던 것이다.

그 결과 천사는 지옥으로 추락하고,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추방되었다. 단테의 『신곡』의 지옥 밑창에서도 선생을 판 가롯 유다와 은인을 죽인 브루투스, 카시우스의 배은망덕과 교만이 벌을 받고 있다. 연옥에서도 제일 밑창에는 교만한 자들이 등에 무거운 돌을 지고 죄를 씻고 있다. 교만이야말로 최대의 죄악임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겸손이야말로 인류의 구원에 절대 불가결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겸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존경과 감사에서 온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질(同質)로서 그를 참으로 알고 그의 옆에 계셨던 그의 아들로서의 존경과 감사였다(요한복음 1: 1). 이 존경과 감사에서 그리스도는 자기를 완전히 비워 하나님 앞에 희생과 순종으로 오직 저의 영광을 위해 자기를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심려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밀턴의 『실락원』에는 하나님의 이 깊은 심려를 풀기 위해 그리스도가 속죄의 죽음을 제의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겸손이 동양적인 의미의 소극적인 겸양이나 비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적극적인 복종, 희생, 봉사, 인종, 싸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리하여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로서 천국의 보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성서연구』 제65호 (1956년 12월)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겸손이 동양적인 의미의 소극적인 겸양이나 비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적극적인 복종, 희생, 봉사, 인종, 싸움인 것을 알아야 한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34곡에 나오는 루시퍼의 모습. 스승의 은혜를 배신한 유다, 브루투스, 카시우스를 물어뜯고 있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