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평화를 권고함

by 안티고네 2001. 2. 6.

그동안 급박하게 돌아가던 중동, 동유럽 사태가 이 정도나마 안정된 것을 나는 한없이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이집트와 헝가리의 자유를 위한 영웅적 항쟁에 대해 너무 동정심이 없는 태도가 아니냐 하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집트에 대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전쟁 행위와, 헝가리에 대한 소련의 포학에 대해 증오와 분노를 느낀다. 앤터니 이든(Anthony Eden, 1955년 4월 6일 처칠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으나 건강 악화로 1957년에 사임했으며 1977년에 사망)의 발병을 나는 하나님의 징벌로 보고 있다. 이든은 전통적인 영국 외교가에서 자란 이상 없는 교활한 정치가이다. 토인비도 영국의 죄를 솔직히 지적한 바 있지만, 나는 금후 인류에 대한 영국의 이상적인 기여를 위해 이 기회에 이든의 실각, 아니 실로 죽음을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이 인류사의 과도기를 넘기기 위해 인류는 지금 예언자적인 이상형의 인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 프랑스는 제국주의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본국은 물론 전 인류의 강력한 반대에 봉착한 셈이다. 반면 소련은 공산 독재에 대한 다소의 시정을 기도하다가 다시 더러운 스탈린 독재로 돌아가려는 듯하다.

이 강대국들의 부정, 불의에 대한 약소국 이집트의 고집과 헝가리의 비이성적인 열광적 거사에 대해서도 나는 불만을 표하는 바이다. 양국 모두 좀더 냉철한 태도로써, 점진적인 개혁을 도모하고, 열광적인 항거 이상 이성적인 인내와 희생으로써 대처할 일이었다.

나는 이것이 소련 독재의 붕괴를 위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으로 본다. 헝가리가 민주 국가의 무력 개입을 원했다면 그것은 더욱 언어도단이다. 이집트 역시 양대 진영에 추파를 보내며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비열한 심산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집트는 더욱 자국의 내적 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력적인 쿠데타와 침략, 독재로써 세계를 소란케 한 공산주의가 우리의 평소 예측대로 인민 대중의 협력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그 수명이 얼마 남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물론 공산주의의 비진리성에 기인한 것이지만, 더욱 중요한 원인은 그들의 무력적인 혁명주의와 독재, 억압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전쟁, 살인, 폭력이야말로 최대의 죄악인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번 사건들을 통해 다시 한번 기독교의 절대평화주의, 무저항주의를 인류에게 권하는 바이다. 그리고 끝으로 나는 이번 사건에 있어서 미국과 인도를 비롯한 다수 국가들이 불편부당하게 대처하여, 영국과 소련의 침략, 독재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은 인류사의 일단의 진보를 이룩한 것으로 믿는다.

『성서연구』제65호(1956년 12월호)








앤터니 이든(Anthony Eden, 1897-1977)

1955년 4월 6일 처칠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뒤에는 N.S. 흐루시초프, N. A. 불가닌 등의 소련 지도자들을 영국에 초청해 국제적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56년 7월 26일 이집트의 국가원수 가말 아브델 나세르가 1875년 이래 영국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수에즈운하회사를 국유화하면서, 이든은 정치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집트의 조치에 대응해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공격 1주일 뒤인 11월 5일 함께 이집트를 공격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