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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신앙과 회심

by 안티고네 2001. 6. 10.

본지 독자 중 고령이신 J선생께서 수일 전에 들르시어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주셨다. 해방 직후에는 돌아다보지도 않았던 적산(敵産)에 대해, 요새는 그거라도 하나 차지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나는 때가 있으니 큰 타락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을 어려운 현실에서 나 같은 후배에 대한 선생의 격려로 알고 감격으로 받았다. 아울러 선생은 3, 40년간 당신의 그 높은 신앙 지조와 생활을 지켜준 것은 오로지 청년 시절에 체험한 생생한 하나님의 구원과 회심의 은혜였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놀라운 회심의 체험을 들려주셨다.

선생은 3.1운동 직후 민족 문제, 국가 문제, 세계 문제는 예수의 재림을 떠나서는 절망적이라는 견지에서, 소위 재림신앙으로 기독교에 들어갔다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가 재림하실 것을 생각하니 자신의 죄의 문제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심히 걱정되어 참으로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인 함경남도의 엄동설한에 성천강 강물에서 여러 날 얼음을 깨고 물속에 잠기기도 하고, 얼음판 위에 단좌(端坐)도 하고, 밤중에 맨발로 피투성이가 되어 얼음 위로 40리를 걷기도 하는 고행도 했으나 아무런 효력도 없었다고.

그래서 하룻밤은 달빛 흐르는 높은 산 위에서, 소년 시절 어머니에 대한 반역과 불신에서 시작하여, 지난날의 무수한 죄책감에, 아니 온 몸이 죄의 덩어리임에 압도되어 신음하던 중, 위에서 오는 하나님의 똑똑한 죄 사함의 음성에 접했다.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하산하여 찬미의 생활을 계속하던 중, 그 후 또다시 죄와 죄책감에 빠지게 되어 다시 산상에서 고투하던 중, “너의 죄는 내가 저번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단번에 용서, 해결해 주었는데, 이게 또 무슨 짓이냐” 하는 섬광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접하여 그야말로 평화, 기쁨, 안심, 용기의 신앙 생활이 이루어져, 이로써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를 들으며 바울의 회심,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회심, 특히 영국의 저 유명한 『천로역정』의 작가 존 번연의 회심을 듣는 듯 했다. 이 심각한, 절망적인 죄의식,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이의 철저한 해결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 그리스도의 구속(救贖)과 복음임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오늘날 기독교를 불교적인 금욕주의나 중세적인 신비주의내지는 도덕적인 교훈으로 알고, 수도, 고행은 물론, 선행과 덕행과 사업 등에 열중하는 자들은, 이 하나님의 구원 자체를 돌아다보지 않는 자신의 불신을 살필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양심 문제, 도덕 문제, 즉 죄의 문제의 실감과 고투와 절망 없이 다만 기독교를 머리로써 신학이나 사상 등에 의해 추구하는 자들도 같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절감한다.


『성서연구』 제76호(1958년 6.7월)




루오 <성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