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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 서평

20. 추기경은 왜 빨간색 옷을 입을까?<퍼펙트 레드>

by 안티고네 2018. 5. 22.

추기경은 왜 빨간색 옷을 입을까?

에이미 버틀러 그린필드 지음, 이강룡 옮김, ?퍼펙트 레드?(바세, 2007)

 

19세기에 인공 염료가 발명되기까지는 붉은 색깔 내는 염료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신비로운 물질과 비법을 이용할 줄 아는 소수의 기술자들만이 그 색을 구현할 수 있었다. 크로마뇽인이 그림 그릴 때 사용했던 안료인 황토가 있었지만 염색업자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그림이 아닌 옷이니만큼, 햇볕과 땀 그리고 반복되는 세탁을 견딜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고대 지중해 세계 동쪽 해안 레반트에 거점을 둔 페니키아인들은 페니키아 근해의 뿔고동에서 채취한 값비싼 자줏빛 염료를 지중해 각지에 수출해 큰 재미를 보았다. 그들이 생산한 염료가 고대 세계에서 얼마나 유명했던지, 그리스어에서 페니키아인자줏빛 민족(purple people)’을 뜻했다. 색을 내기 어렵고 값이 비쌌기 때문에 붉은 옷감은 부유한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공화정 로마 시대에는 집정관이나 전쟁에 이기고 개선하는 장군들만이 자주색 망토를 착용할 수 있었다. 제정 로마 이후 자주색은 황제 전용이 된다. 이 전통은 로마 멸망 이후 중세에도 이어져 자주색은 왕이나 귀족의 색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에는 회색, 감색 또는 검정 양복, 베이지색 블라우스, 그리고 검은 줄무늬 정장이 성공한 사람의 복장이다. 튀지 않는 색상을 고급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1350-1550) 유럽인은 반대로 생각했다. 회색과 베이지색은 가난을 의미했다. 빈민과 하층 농민, 수도사, 수녀들만 그런 수수한 색의 옷을 입었다. 반면 밝고 강렬하고 선명한 색조의 의상은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이자, 문맹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권력의 표식이었다.

 

중세 지배자들은 사회 각 계급별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규정한 사치단속법을 시행했다. 신하들이 허영이나 사치를 부리지 않기를 바랐던 통치자들이 하달한 이 법은 그 누구도 군주보다 더 호화롭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치단속법은 모든 종류의 피복을 규제한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는 일반인이 금색 레이스나 벨벳, 진주, 담비나 족제비 모피를 착용하는 것을 금했다. 14세기 잉글랜드에서 자영농과 직공은 비단, 반지, 보석, 단추를 착용할 수 없었다.

 

사치단속법은 의복 색상에까지 개입하여 귀족과 부유층만이 밝고 선명한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규제 법령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샤를마뉴 황제(742-814)는 농민에게 회색이나 검정색 옷을 입으라고 명령한 일이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15세기 피렌체 지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상당수 중세 유럽 국가에서 오직 귀족만이 주홍색 옷을 입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옷 색상 규제는 중간 계급과 빈민들에게는 사실상 필요 없는 것이었다. 뻔한 경제 사정으로 인해 비싼 염료로 물들인 옷감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빨간 색은 고대로부터 귀한 염료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색은 임페리얼 퍼플(imperial purple)이었다. ‘황제의 자주색이라는 뜻의 이 색상은 범위가 넓어서 자주색뿐만 아니라 진한 주홍(scarlet)과 선홍색(crimson)까지도 포함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색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염색업자가 옷 한 벌을 염색하는데 필요한 임페리얼 퍼플을 추출하려면 뿔고동 수천마리를 으깨야만 했기 때문에 임페리얼 퍼플은 대단히 비싼 염료였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통치하던 서기 4세기에 임페리얼 퍼플로 염색한 최상품 옷감 1파운드(0.45kg)는 로마 은화 50,0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다. 당시 석공의 하루 임금이 50데나리온이었으니 1,000(거의 3)치 임금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임페리얼 퍼플은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권력과 위신의 탁월한 상징이 되었다. 칼리굴라와 네로, 그리고 4세기 황제 통치 하에서는 황실 사람들만 임페리얼 퍼플로 염색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이런 전통은 그리스도교가 수용된 중세 유럽에서도 이어졌다. 1295년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임페리얼 퍼플 색상의 옷을 입을 것을 선포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추기경의 자주색전통은 가톨릭교회에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빨강색 옷은 농민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법적 제약과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 때문에 입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농민들은 기껏해야 값싼 오렌지 레드나 황갈색 염색 천을 구해 입을 수 있었다. 이것조차 색이 너무 선명하면 사치단속법에 저촉될 수 있었다. 1525년 독일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는데, 그들의 요구 사항 중에는 붉은 옷을 입을 권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빨강 옷을 얼마든지 구해 입을 수 있는 오늘의 시각에서는 그들의 열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옷장 안에서 빨강색 옷을 하나 꺼내 입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