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를 전혀 하지 않는 기독교
임세근 지음, ?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리수, 2013)
1986년 개봉된 해리슨 포드 주연 영화 <위트니스>는 미국의 아미쉬 기독교 공동체 마을을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국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 분파인 아미쉬 공동체는 현대 문명을 거부한다. 자동차, 라디오,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에어컨, 헤어드라이어, 컴퓨터, 전화 등이 금기 품목이다. 18세기에 독일과 스위스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로 이주한 아미쉬 사람들은 지금도 영어 아닌 독일어로 말한다. 지리산 자락의 청학동 마을이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 등 문명의 이기를 두루 갖추고 있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21세기 미국 한복판에서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아미쉬 공동체의 삶은 경이롭다.
16세기에 루터와 츠빙글리 등에 의해 전개된 유럽의 종교개혁 운동은 정치권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집단은 ‘교회와 정부의 완전 분리’ ‘무저항 평화주의’ ‘성인(成人) 세례’ 등을 내세우며 ‘스위스 형제들(Swiss Brethren)’이라는 새로운 교파를 형성했다. 그들은 어른이 되어 이성적 판단력을 갖춘 뒤에 개인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 세례가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유아세례를 거부했다. 이처럼 성인 신자에게 세례를 다시 받도록 했으므로 그들을 재세례파(Anabaptists)라고 부른다.
재세례파는 ‘유아세례 거부’와 ‘무저항 평화주의’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진영은 물론이고 가톨릭 진영으로부터도 극심한 박해를 당했다. 당시에는 유아세례가 곧 출생신고였다. 출생신고를 거부하면 정부는 세금 징수의 근거 자료를 갖지 못한다. 게다가 무저항 평화주의는 군 징집 거부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그들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범죄 집단 취급을 받았고, 반사회적 위험집단으로 지목되어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1536년 메노 시몬스(Menno Simons)가 탄압 받던 재세례파의 지도자로 떠올랐다. 당시에는 지도자의 이름을 교파 이름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재세례파도 지도자 이름을 따서 메노나이츠(Mennonites)로 불렸다. 그리고 얼마 후 메노나이츠가 시류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이자, 제이콥 암만(Jacob Amman)을 따르는 그룹이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 새로운 교파도 지도자 이름을 따 아미쉬(Amish)라고 불렀다. 종교개혁 시대가 지난 뒤에도 유럽대륙에는 종교 갈등이 식지 않았다. 2백 년 동안 박해 받던 아미쉬 사람들은 18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에 건설된 식민지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해 새로운 터전을 일구게 된다.
아미쉬 사람들은 공동체 바깥사람들에게 전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교리에 관해 이교도들에게 설파하지도 않으며, 교세 확장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권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순수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겸허한 삶에 동경심을 품는다.
2006년 10월 어느 날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 카운티의 아미쉬 학교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아미쉬 마을 낙농가를 돌며 우유를 수거하던 트럭운전사였다. 범인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어린 세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월요일 오전 수업 중 교실로 쳐들어간 범인은 남학생들은 모두 내보낸 뒤, 어린 여학생 10명만을 감금한 채 범행을 저질렀다. 5명의 소녀가 현장에서 숨졌고, 나머지 5명 소녀도 중상을 입었다. 범인도 현장에서 목숨을 끊었다.
9년 전 자기 첫딸이 출산 직후 사망한 이유가 신의 저주 때문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진 범인이 보복 심리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경찰은 발표했다. 범인이 학교에 침입해 총을 난사하기까지 20여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현장에 있던 소녀들 중 5명이 사망했고 5명이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중상 입은 소녀들이 의식을 되찾은 뒤에야 현장 상황이 알려졌다.
13살 난 소녀 마리안 피셔(Marian Fisher)와 11살 난 소녀 바비 피셔(Barbie Fisher, 친동생)는 교실에 있던 9살 소녀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나를 먼저 쏘세요!(Shoot me first!)”라고 범인에게 호소했다. 범인이 총을 쏘려는 낌새를 알아챈 마리안과 바비는 자신들이 죽으면 다른 동생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라고 믿고 범인에게 애원을 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 5명이 미치광이 범인 앞에서 저학년 동생들을 안심시키며 보호하려고 애쓰다가 희생을 당한 것이다. 극한적인 공포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어린 동생들을 구하려 했던 정황이 전해지면서 세상 사람들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아닌 ‘삶’과 ‘존재’로 실천하는 신앙이다.
아미쉬 사람들은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소녀 5명을 신앙을 위해 목숨을 던진 순교자로 기억한다. 어린 동생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앞 다투어 던진 소녀들의 죽음을 누가 순교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도를 전혀 하지 않는데도 아미쉬 인구는 20년마다 2배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산아제한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민 중 일반인의 비만율이 약 31%인데 비해, 아미쉬 사람들의 비만율은 4%에 불과하다. 일반인의 8분의 1 수준이다. 농경 생활을 하는 그들의 활동량이 많기 때문인데,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아미쉬 성인 남자는 하루 평균 1만 8천보, 성인 여자는 1만 4천보를 걷는다고 한다. 일반인 권장량(1만보)보다 두 배 가까운 운동량이다. 건강한 영혼과 육체에 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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