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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밀턴

[독자서평]아레오파기티카

by 안티고네 2015. 6. 14.

자유롭게 쓰고 말할 권리-『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

http://xuecheng.egloos.com/4187464

아레오파기티카 - 표현의 자유 초록불님 글에서 트랙백
 
국가에 대해서 건전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고 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칭송을 받을 때,
그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의지도 없는 사람이
침묵을 지킬 수 있을 때,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한 나라에 이보다 더 큰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에우리피데스. 『탄원자』 中)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하면 『실낙원(Paradise Lost)』(1667)과 『복낙원(Paradise Regained)』(1671)을 쓴 문학가로 유명하다. 그는 "내 명예를 위해서는 라틴어로 글을 써야 하지만, 나는 모국어를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 영어로 글을 쓰겠다"고 해서 주요 저술을 영어로 남겼다.

 

하지만 정치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다. 그는 17세기 자유주의 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왕정의 억압에 반대해 청교도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찰스 1세의 처형에도 찬성했다. (그 때문에 왕정이 복고가 되고, 설상가상으로 시력을 잃어 고통스런 말년을 보내야 했다)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1644)는 의회파가 1643년 강화된 출판허가법(The Licensing Order of 1643)에 반대하면서 자유로운 출판을 주장하며 쓴 글이다. 출판허가법은 자유를 외치며 왕정에 맞서는 혁명정신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밀턴은 이에 반대하며 아레오파고스(Areopagos)에서 이름을 딴 『아레오파기티카』를 쓴 것이다.

 

(※ 아레오파고스는 고대 아테네의 법정/회의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신화에 따르면 전쟁의 신 아레스는 자신의 딸 알키페를 겁탈하려는 포세이돈의 아들 하리로티오스를 죽인 뒤 이 언덕에서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다. 신화에 기록된 이 인류 최초의 재판에서 아레스는 올림포스 신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 재판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공정한 판결의 모범사례가 되었다. 현재 그리스 대법원의 이름도 아레이오스 파고스이다.)
 
현재 한국에 나온 번역본은 2종이 있다. 『아레오파지티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나남출판사 번역본(임상원 역주. 나남. 2013)과 초록불님이 언급하신 『아레오파기티카』로 번역된 소나무 출판사 번역본(박상익 역. 소나무. 1999)이 있는데, 초록불님께서 서평을 해 주신 소나무 출판사 번역본이 훨씬 읽기 쉽게 쓰여 있다.

 

(※ 소나무 출판본은 아깝지만 절판되어서 도서관에 가야 찾을 수 있다. 소나무 출판사가 좋은 책들은 재출간을 하는 출판사인 만큼, 조만간 재출간본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원문은 online Library of Liberty에서 제공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간본(Jebb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18)[링크]를 무료로 볼 수 있고, adelaide ebook 제공 서비스에서도 원문[링크]를 무료로 볼 수 있다.
 
검열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불건전한(......??!) 내용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밀턴은 다음과 같은 논지로 이를 반대한다.
 
1. 검열을 해도 불건전한 내용은 얼마든지 다른 경로로 퍼지며, 이를 접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2. 검열관이 (분량도 많고 재미없는) 내용을 일일이 검열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불가능하다.
 
밀턴은 또 올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거짓된 지혜를 잘 논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덮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된 글을 읽고 탐구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검열제도는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길도 막는 것으로, 공원에 까마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공원 문을 막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그는 잘못된 내용이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은 진리가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 번역문의 인용 기준은 소나무 출판사 번역본으로 했다.)
 
Give me the liberty to know, to utter, and to argue freely according to conscience, above all liberties.
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주십시오.
(위 책 p.106)
 
all the winds of doctrine were let loose to play upon the earth, so Truth be in the field, we do injuriously, by licensing and prohibiting, to misdoubt her strength. Let her and Falsehood grapple; who ever knew Truth put to the worse, in a free and open encounter? Her confuting is the best and surest suppressing.
온갖 종류의 교리가 풀려나서 세상에 밀어닥치는 와중에도 진리는 전투를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가 검열제와 금지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은 부당하게도 진리의 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진리의 논박이야말로 최선의 억압이며 가장 확실한 억압입니다.
(위 책. p.108)
 
For who knows not that Truth is strong, next to the Almighty? She needs no policies, nor stratagems, nor licensings to make her victorious; those are the shifts and the defences that error uses against her power. Give her but room, and do not bind her when she sleeps, for then she speaks not true, as the old Proteus did, who spake oracles only when he was caught and bound, but then rather she turns herself into all shapes, except her own,
진리가 전능하신 신 다음으로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누구입니까.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필요없고 전략도 필요없으며 검열제 또한 필요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오류가 진리의 힘에 맞서 싸울 때 사용하는 수단이며 방책입니다. 진리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해 주십시오. 그리고 진리가 잠들었을 때 묶지 마십시오. 진리는 묶여 있을 때는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로잡혀 꽁꽁 묶일 때에만 신탁을 말하는 늙은 프로테우스[Proteus]와는 다릅니다. 진리는 구속을 받게 되면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온갖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위 책. 109~110)
 
언론의 자유를 설파한 책이지만, 그가 주장한 자유가 "반 카톨릭"과 "기독교주의"를 기본 전제로 놓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보이는 책이다. 문체 자체도 그렇게 쉽게 읽히는 문체가 아니다. (게다가 나남출판사 번역본은 정말 읽기 힘들다. ㅡ.ㅡ) 하지만 사상의 자유, 자유롭게 쓰고 말할 수 있는 언론의 권리에 관심있는 분들은 꼭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밀턴의 사상과 『아레오파기티카』의 주요 논지를 쉽게 읽고 싶은 분들은 『나의 서양사 편력』(전 2권. 박상익. 푸른역사. 2014) 1권 뒷부분에 밀턴을 주제로 쓰여진 5편의 글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덧: 말년에 밀턴은 가난으로 고통스런 와중에 시력을 잃어 고생했는데, 그런 그를 어느 날 요크 공 제임스(제임스 2세)가 형 찰스 2세에게 밀턴을 한번 만나봐도 좋겠냐고 승낙을 구했다. 왕은 동생의 호기심을 막을 생각이 없다며 기꺼이 허락했다. 얼마 후 제임스는 밀턴의 거처를 개인적으로 방문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제임스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밀턴의 실명이 그의 혁명 활동에 대한 '천벌天罰'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밀턴은 이렇게 답했다.

 

"만일 전하께서 저의 실명을 하늘이 진노하신 징후라고 생각하신다면 전하의 부친이신 선왕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하늘은 저보다는 부친께 훨씬 더 불쾌하셨던 게지요. 저는 두 눈을 잃었을 뿐이지만 선왕은 머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시력을 잃는 걸로 끝났는데 당신 아버지는 목이 날아갔다. 얼마나 큰 신의 분노를 샀길래 그렇게 되었냐"는 반문이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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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쓰고 말할 권리-『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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