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김상일 님과 정성인(nieel) 님의 글,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답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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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3 박상익 교수님 반갑습니다. <<< 김상일 님의 글.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교수님의 칼럼에 들어왔습니다. 저도 크리스천이고요. 1년 반 정도 전에 저의 전공과 제가 믿는 신앙이 통합되어야 할 필요를 깨닫고 그것을 제 인생의 길로 삼은 학부생입니다. 제 이름은 김상일이고요. 대략 2년 정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지금은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교수님 칼럼을 읽으면서 계속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어쩌면 그렇게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저 자신의 신앙의 이상과 일치할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저는 무교회주의를 몇 번 이름만 들어봤을 뿐 아직 잘 모릅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글을 보니 무교회주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듭니다. 앞으로 자주 들어와서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해도 될까요?
참, 저는 아직 전공은 정하지 못했고요. 역사학도가 될 생각도 약간은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에 우연히 경제사를 들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고, 해볼 만한 전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직 전공을 정하지 못한 터라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전공은 일단은 '법'쪽입니다. 물론 변호사 되는 법학은 아니고요. 구약성경의 율법과 현대의 법을 비교해 보는 것이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하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역사학도 상당히 매력 있는 학문분야 같습니다. 어쨌든 교수님 같은 분을 뵙게 되어서 정말로 반갑습니다. 계속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이 민족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하시는 교수님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 상 일 드림.
<<< 박상익의 답장.
김상일 님 반갑습니다.
제 글이 김상일 님이 생각하신 이상과 일치한다고 말씀해주시니, 칼럼을 운영하는 저로서는 그 이상의 격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독일 시인 노발리스(Novalis)가 이런 말을 했죠. "다른 사람이 믿어주는 순간 나의 신념은 무한한 힘을 얻는다."고 말입니다.
무교회주의에도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학생 시절부터 노평구 선생님으로부터 신앙과 학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김상일 님이 지금 그러하듯이, 저도 전공과 신앙을 일치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종교, 문학, 역사를 함께 공부해보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법학을 하시든 역사학을 하시든, 김상일 님이 평생 애정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셔서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의 율법과 현대의 법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자못 흥미롭겠군요. 저는 법학에는 문외한입니다만 자연법(Natural Law) 사상이 기독교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경제사도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경제사 공부하시다 보면 마르크스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크리스천으로서 당혹스럽지는 않으시던지요? 혹시 그러하시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광범하게 지식을 섭렵하시기 바랍니다. 경제사 공부하면서 마르크스를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이라면, 아무리 반(反)기독교적인 서적일지라도 읽을 건 다 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믿음에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서재에 마르크스 <자본론>과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 선집>을 기본 장서로 구비해놓고 있습니다.
역사학은 제가 볼 때 이 시대의 종합 학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마지막 학문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의 인문학의 열악한 위상을 생각할 때, 저로서는 섣불리 역사학 전공을 하라고 권하기는 망설여지는군요. 현실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이 세상에 궁금하고 모를 것이 너무나 많은, 바닷가의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소년이 늙기는 쉽고 배움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공자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도움이 된다면, 아는 범위 내에서 모든 도움을 다 드리겠습니다. 자주 찾아주시고,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저의 지난 칼럼들도 훑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상익 드림.
(그런데 "김상일", "김영일" 두 이름 중 어떤 것이 맞는 이름인가요? 저는 일단 본문의 기록을 중요시해서 김상일 님으로 표기했습니다. 혹 틀렸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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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3 박상익님의 논평에 대한 제 논평 <<< nieel님의 글.
글을 올리고서 답변이 언제쯤 올라올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너댓 시간 후에 들어온 칼럼의 전면에 실린 박상익 님의 답변은 솔직히 기대 이상으로 빨랐습니다. 저는 금요일쯤에나 박상익 님의 글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긴 글을 정성껏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상익 님의 전공과 관계된 역사를 걸고 넘어졌기 때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박상익 님의 진지한 관심, 따뜻한 언어에 대해 일단 제 소개를 하는 것으로 답합니다. 저는 서울대 사회학과 3학년 정성인입니다. 전공이 역사 쪽이 아닌지라 고유명사, 숫자가 가세한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 알지 못하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그리고 전공에 대해서도 그리 잘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부끄럽지만, 밝힙니다.
그럼 박상익 님의 답변 글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주주의 사상이 동양에도 일찍이 존재했다는 데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도 언급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것은 하나의 <실천적인 정치 체제>로서, 그리고 <현실 이데올로기>로서 정착된 민주주의를 말한 것이지, 단순히 사상가, 철학자들의 머리 속에 존재했던 <사상으로서의 민주주의>, <관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여성과 노예 계급이 배제되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제한된 집단 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직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행>되었다는 점에서 고대사에서 참으로 기적적인 일로 생각합니다. "
저 역시 사상가나 철학자의 관념, 사상으로 머물러 현실과 유리된 민주주의를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박상익 님께서 <실천적인 정치 체제>, <현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하심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 중 전자를 강조하여 말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대의제, 정당정치, 삼권분립, 입헌법치 등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서양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외래문화라고 말할 때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뜻한다면 동의합니다. 하지만 가치체계로서, 사상가, 철학자들의 머리 속에 존재했던 것으로 그치는 관념, 사상이 아니라, 가치체계로서 기능하는 민주주의의 여러 양상들은 이 땅에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여론 형성, 수렴, 의사결정과정에서 정교하게 조직화된 현재의 모습과는 어느 정도 달랐을 것입니다.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앞서 올린 제 글에서 홍익인간, 민란, 심사에 관하여 말씀드린 것으로 가름합니다.
절대주의 시대에도 王權이 그렇게 막강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신선한 충격입니다. 읽고 보니 왕권이 피지배계층을 완전히 무시하고 행사된 적은 서구나 우리나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에서의 王은 서구의 중세시대, 절대주의 시대의 王과 다름을 인정해줍시다>의 제 글은 일단 정밀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것으로 반성합니다. 아시아의 전제왕권은 놔두고 우리의 전제왕권이, 절대주의가 이상으로 여겼던 막강한 권력을 전횡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논의해볼 것을 제안합니다.
대학제도가 다른 시간, 공간의 고등교육체계와 다른 점에 대한 부분은 제가 잘 몰랐던 부분입니다. 제 생각에는 박상익 님의 말씀대로라면 효율적인 지적탐구와 이를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서의 대학상은, 아직 우리에게 이상으로 남은 부분이 많군요. 그리고 한양대 임지현 교수와 그의 책은 본 적,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폐해에 대한 내용은 짐작됩니다.
제 의견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우리 역사에 구현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 요소가 산재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 본 부분에 대한 지적을 인정했으며, 더 살펴볼 부분을 제기했습니다. 박상익 님의 고견을 기다립니다.
<<<박상익의 답장
정성인 님, 올려주신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말이 통하는, 대화가 되는 독자를 한 분 더 만난 것이 기쁩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재론할 문제는 다시 제기하는, 건전한 상식을 구비한 분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반갑습니다. 제가 공연히 띄우는 게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종교가 원래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물론 저는 그렇게 안 보죠), 일부 기독교 믿는다는 분들 너무나 닫혀 있더군요. 자신이 정한 믿음의 성벽 안에, 문자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저는 정성인 님께 신선한 충격을 느끼면서, 아울러 우리 미래의 가능성을 느낍니다.
<제 의견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우리 역사에 구현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 요소가 산재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정성인 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가 비록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정착에는 성공하지 못했을지언정, 우리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민주주의의 본산지인 서양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진리가 잠재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수입한 처지이지만, 우리의 가치 체계를 현실 민주주의 제도 속에 불어넣어 융합시킨다면, 유럽인들이 발달시킨 것보다 더욱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이루어낼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입니다. 우리에게 그럴 역량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누구도 우리의 앞날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어떤 제도나 사상을 누가 맨 먼저 만들어 냈느냐, 원조가 누구냐, 이런 건 역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볼 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인쇄술의 경우,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이 <역사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지는 못했습니다. 불경의 오자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등장한 것이었죠. 활자 제작 과정에서 오자가 나오면 활판 제작자들을 형벌로 다스렸다고 합니다. (다니엘 부어스틴의 <발견자들 1, 2>를 일독하실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맨 먼저 성경을 찍어냈죠. 그리고 마틴 루터의 <95개조 논제>도, 인쇄술이 없었다면, 불과 한 달만에 전 유럽에 유포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종교개혁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성공적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시아의 전제왕권은 놔두고 우리의 전제왕권이, 절대주의가 이상으로 여겼던 막강한 권력을 전횡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논의해볼 것을 제안합니다.>
정성인 님의 말씀하시는 취지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감합니다. 예를 들자면 사관(史官)이 임금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기거나 해서 전횡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 우리의 전제 왕권이 갖는 미래지향적인 장점이 되겠지요? 저는 지금 막, 엉뚱하게도,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 통치 자료가 송두리째 사라졌다는 얘기가 떠오르는군요. 20세기의 공화정(비록 독재정이긴 했지만) 체제가, 수백 년 전의 조선 왕정보다도 수준이 낮았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우리 역사는 이런 점에서 실로 단절의 역사입니다. 거북선 제작법도 지금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려자기, 조선백자 제조법도 모조리 단절되었습니다. (근래에 복원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의 값진 전통을 현실 속에 뿌리내리게 만들어, 제도화 시켜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결과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화성 씨랜드 화재사건,.... 이렇게 비슷한 재난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저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서양이 발달시킨 근대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합리성, 이성, 효율성, 상식이 사회 각 부문에 속속들이 침투해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기어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대주의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 매우 강력한 파괴력을 행사해온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분명히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그 방면에 대한 대비 또한 아울러 진행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정말 할 일 많은 나라 아닙니까? 그러나 저는 역설적으로 할 일 많은 나라에 태어난 것을 어떤 면에서 감사하게 생각할 일이라고 봅니다. 복지가 거의 완벽한 수준에 이른 서양인들이 마약, 동성애, 총기 난동, 폭력, 높은 자살율 등 각종 사회 문제로 허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삶이란 역시 과정에 불과한 것이며, 현실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맞서 저항하려는 자세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더 고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성인 님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박상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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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3 박상익 교수님 반갑습니다. <<< 김상일 님의 글.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교수님의 칼럼에 들어왔습니다. 저도 크리스천이고요. 1년 반 정도 전에 저의 전공과 제가 믿는 신앙이 통합되어야 할 필요를 깨닫고 그것을 제 인생의 길로 삼은 학부생입니다. 제 이름은 김상일이고요. 대략 2년 정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지금은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교수님 칼럼을 읽으면서 계속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어쩌면 그렇게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저 자신의 신앙의 이상과 일치할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저는 무교회주의를 몇 번 이름만 들어봤을 뿐 아직 잘 모릅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글을 보니 무교회주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듭니다. 앞으로 자주 들어와서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해도 될까요?
참, 저는 아직 전공은 정하지 못했고요. 역사학도가 될 생각도 약간은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에 우연히 경제사를 들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고, 해볼 만한 전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직 전공을 정하지 못한 터라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전공은 일단은 '법'쪽입니다. 물론 변호사 되는 법학은 아니고요. 구약성경의 율법과 현대의 법을 비교해 보는 것이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하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역사학도 상당히 매력 있는 학문분야 같습니다. 어쨌든 교수님 같은 분을 뵙게 되어서 정말로 반갑습니다. 계속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이 민족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하시는 교수님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 상 일 드림.
<<< 박상익의 답장.
김상일 님 반갑습니다.
제 글이 김상일 님이 생각하신 이상과 일치한다고 말씀해주시니, 칼럼을 운영하는 저로서는 그 이상의 격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독일 시인 노발리스(Novalis)가 이런 말을 했죠. "다른 사람이 믿어주는 순간 나의 신념은 무한한 힘을 얻는다."고 말입니다.
무교회주의에도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학생 시절부터 노평구 선생님으로부터 신앙과 학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김상일 님이 지금 그러하듯이, 저도 전공과 신앙을 일치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종교, 문학, 역사를 함께 공부해보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법학을 하시든 역사학을 하시든, 김상일 님이 평생 애정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셔서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의 율법과 현대의 법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자못 흥미롭겠군요. 저는 법학에는 문외한입니다만 자연법(Natural Law) 사상이 기독교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경제사도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경제사 공부하시다 보면 마르크스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크리스천으로서 당혹스럽지는 않으시던지요? 혹시 그러하시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광범하게 지식을 섭렵하시기 바랍니다. 경제사 공부하면서 마르크스를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이라면, 아무리 반(反)기독교적인 서적일지라도 읽을 건 다 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믿음에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서재에 마르크스 <자본론>과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 선집>을 기본 장서로 구비해놓고 있습니다.
역사학은 제가 볼 때 이 시대의 종합 학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마지막 학문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의 인문학의 열악한 위상을 생각할 때, 저로서는 섣불리 역사학 전공을 하라고 권하기는 망설여지는군요. 현실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이 세상에 궁금하고 모를 것이 너무나 많은, 바닷가의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소년이 늙기는 쉽고 배움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공자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도움이 된다면, 아는 범위 내에서 모든 도움을 다 드리겠습니다. 자주 찾아주시고,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저의 지난 칼럼들도 훑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상익 드림.
(그런데 "김상일", "김영일" 두 이름 중 어떤 것이 맞는 이름인가요? 저는 일단 본문의 기록을 중요시해서 김상일 님으로 표기했습니다. 혹 틀렸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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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3 박상익님의 논평에 대한 제 논평 <<< nieel님의 글.
글을 올리고서 답변이 언제쯤 올라올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너댓 시간 후에 들어온 칼럼의 전면에 실린 박상익 님의 답변은 솔직히 기대 이상으로 빨랐습니다. 저는 금요일쯤에나 박상익 님의 글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긴 글을 정성껏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상익 님의 전공과 관계된 역사를 걸고 넘어졌기 때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박상익 님의 진지한 관심, 따뜻한 언어에 대해 일단 제 소개를 하는 것으로 답합니다. 저는 서울대 사회학과 3학년 정성인입니다. 전공이 역사 쪽이 아닌지라 고유명사, 숫자가 가세한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 알지 못하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그리고 전공에 대해서도 그리 잘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부끄럽지만, 밝힙니다.
그럼 박상익 님의 답변 글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주주의 사상이 동양에도 일찍이 존재했다는 데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도 언급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것은 하나의 <실천적인 정치 체제>로서, 그리고 <현실 이데올로기>로서 정착된 민주주의를 말한 것이지, 단순히 사상가, 철학자들의 머리 속에 존재했던 <사상으로서의 민주주의>, <관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여성과 노예 계급이 배제되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제한된 집단 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직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행>되었다는 점에서 고대사에서 참으로 기적적인 일로 생각합니다. "
저 역시 사상가나 철학자의 관념, 사상으로 머물러 현실과 유리된 민주주의를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박상익 님께서 <실천적인 정치 체제>, <현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하심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 중 전자를 강조하여 말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대의제, 정당정치, 삼권분립, 입헌법치 등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서양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외래문화라고 말할 때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뜻한다면 동의합니다. 하지만 가치체계로서, 사상가, 철학자들의 머리 속에 존재했던 것으로 그치는 관념, 사상이 아니라, 가치체계로서 기능하는 민주주의의 여러 양상들은 이 땅에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여론 형성, 수렴, 의사결정과정에서 정교하게 조직화된 현재의 모습과는 어느 정도 달랐을 것입니다.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앞서 올린 제 글에서 홍익인간, 민란, 심사에 관하여 말씀드린 것으로 가름합니다.
절대주의 시대에도 王權이 그렇게 막강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신선한 충격입니다. 읽고 보니 왕권이 피지배계층을 완전히 무시하고 행사된 적은 서구나 우리나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에서의 王은 서구의 중세시대, 절대주의 시대의 王과 다름을 인정해줍시다>의 제 글은 일단 정밀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것으로 반성합니다. 아시아의 전제왕권은 놔두고 우리의 전제왕권이, 절대주의가 이상으로 여겼던 막강한 권력을 전횡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논의해볼 것을 제안합니다.
대학제도가 다른 시간, 공간의 고등교육체계와 다른 점에 대한 부분은 제가 잘 몰랐던 부분입니다. 제 생각에는 박상익 님의 말씀대로라면 효율적인 지적탐구와 이를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서의 대학상은, 아직 우리에게 이상으로 남은 부분이 많군요. 그리고 한양대 임지현 교수와 그의 책은 본 적,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폐해에 대한 내용은 짐작됩니다.
제 의견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우리 역사에 구현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 요소가 산재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 본 부분에 대한 지적을 인정했으며, 더 살펴볼 부분을 제기했습니다. 박상익 님의 고견을 기다립니다.
<<<박상익의 답장
정성인 님, 올려주신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말이 통하는, 대화가 되는 독자를 한 분 더 만난 것이 기쁩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재론할 문제는 다시 제기하는, 건전한 상식을 구비한 분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반갑습니다. 제가 공연히 띄우는 게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종교가 원래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물론 저는 그렇게 안 보죠), 일부 기독교 믿는다는 분들 너무나 닫혀 있더군요. 자신이 정한 믿음의 성벽 안에, 문자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저는 정성인 님께 신선한 충격을 느끼면서, 아울러 우리 미래의 가능성을 느낍니다.
<제 의견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우리 역사에 구현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 요소가 산재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정성인 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가 비록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정착에는 성공하지 못했을지언정, 우리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민주주의의 본산지인 서양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진리가 잠재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수입한 처지이지만, 우리의 가치 체계를 현실 민주주의 제도 속에 불어넣어 융합시킨다면, 유럽인들이 발달시킨 것보다 더욱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이루어낼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입니다. 우리에게 그럴 역량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누구도 우리의 앞날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어떤 제도나 사상을 누가 맨 먼저 만들어 냈느냐, 원조가 누구냐, 이런 건 역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볼 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인쇄술의 경우,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이 <역사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지는 못했습니다. 불경의 오자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등장한 것이었죠. 활자 제작 과정에서 오자가 나오면 활판 제작자들을 형벌로 다스렸다고 합니다. (다니엘 부어스틴의 <발견자들 1, 2>를 일독하실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맨 먼저 성경을 찍어냈죠. 그리고 마틴 루터의 <95개조 논제>도, 인쇄술이 없었다면, 불과 한 달만에 전 유럽에 유포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종교개혁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성공적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시아의 전제왕권은 놔두고 우리의 전제왕권이, 절대주의가 이상으로 여겼던 막강한 권력을 전횡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논의해볼 것을 제안합니다.>
정성인 님의 말씀하시는 취지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감합니다. 예를 들자면 사관(史官)이 임금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기거나 해서 전횡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 우리의 전제 왕권이 갖는 미래지향적인 장점이 되겠지요? 저는 지금 막, 엉뚱하게도,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 통치 자료가 송두리째 사라졌다는 얘기가 떠오르는군요. 20세기의 공화정(비록 독재정이긴 했지만) 체제가, 수백 년 전의 조선 왕정보다도 수준이 낮았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우리 역사는 이런 점에서 실로 단절의 역사입니다. 거북선 제작법도 지금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려자기, 조선백자 제조법도 모조리 단절되었습니다. (근래에 복원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의 값진 전통을 현실 속에 뿌리내리게 만들어, 제도화 시켜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결과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화성 씨랜드 화재사건,.... 이렇게 비슷한 재난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저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서양이 발달시킨 근대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합리성, 이성, 효율성, 상식이 사회 각 부문에 속속들이 침투해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기어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대주의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 매우 강력한 파괴력을 행사해온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분명히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그 방면에 대한 대비 또한 아울러 진행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정말 할 일 많은 나라 아닙니까? 그러나 저는 역설적으로 할 일 많은 나라에 태어난 것을 어떤 면에서 감사하게 생각할 일이라고 봅니다. 복지가 거의 완벽한 수준에 이른 서양인들이 마약, 동성애, 총기 난동, 폭력, 높은 자살율 등 각종 사회 문제로 허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삶이란 역시 과정에 불과한 것이며, 현실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맞서 저항하려는 자세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더 고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성인 님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박상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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