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네 주되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과 심판의 하나님이시라고 한다. 하나님은 시내 산상 우뢰와 번개 가운데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이웃을 모함하지 말라, 이웃을 탐내지 말라 등등. 기독교는 한마디로 도덕적인 종교이다.
그러나 예수는 다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간음한 자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한 자라, 원수를 사랑하라 하였다. 예수는 도덕적인 구약 종교를 한층 더 깊이 사람의 마음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래서 이를 절대적인 양심의 종교로 만들었다. 세상 종교가 사람에게 소위 행복과 물질 등을 약속한다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써 이를 예배하라고 한 기독교는 과연 종교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세상 종교의 공통된 특징인 의식과 형식과 계율 등 온갖 외형적인 것은 예수의 종교에서는 완전히 배격되고 지양(止揚)되었다. 이는 양심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상 중세 카톨릭의 외형적인 교리와 신학과 금욕, 선행 등으로 깊은 암흑 속에 빠졌던 인류의 신앙과 양심을 다시 깨우친 종교개혁은 실로 루터 한 사람의 예민한 양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이상한 것이 있다. 철저히, 아니 오직 양심 위에 서야 할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각파, 더욱이 그 중심이라고 활 남산파(南山派), 조신파(朝神派), 고신파(高神派), 그리고 감리교의 분열된 양파가 각각 교세 확장을 위해 저지르는 이 추잡한 싸움은 도대체 예수의 종교와 프로테스탄트의 양심과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런 싸움은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아니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번 정부통령 선거에서만 해도 목사들이 신도의 양심적인 투표권 행사를 방해하는 처사에 나선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이런 모든 처사가 양심적인, 더욱이 신앙 양심적인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태에 대한 공적 해명을 박형룡(朴亨龍) 박사, 김재준(金在俊) 선생, 박윤선 씨에게 듣고 싶다. 또한 조선신학교가 정치적인 공적 지위에 있는 함 부통령을 학장 자리에 모신 것도 우리는 양심적인 처사로 볼 수 없다. “하늘을 잊고 영원히 땅에 붙어살려고 하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여!”라고 한 단테의 말을 생각한다.
『성서연구』 1956년 6, 7월
“하늘을 잊고 영원히 땅에 붙어살려고 하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여!” --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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