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대한 감사와 함께,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 마치 풀 속에 숨어드는 뱀과도 같이 한가지 생각이 스며들었다. "아, 이제 피난살이도 끝났구나. 평화가 왔구나. 아이들도 늘어가니 셋방살이도 면해야 하겠다. 사실 사람의 목숨이란 언제 죽을지 알 수도 없고, 이 기회에 우리가 조용히 적당한 땅을 잡고 최소한의 생활의 독립과 보장을 위해, 아내는 생활을 맡고 나는 10년 동안 밀린 공부를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리하여 우리 부부는 큰 희망과 만족 가운데 대전 이주를 결정했다. 가을 어느 날 경부선 열차로 부산을 떠나 대전에 가서 시장에 판잣집 한 채를 계약하고 약방 경영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부부로서는 생애 처음 큰돈을 움직였다. 집기를 팔고, 빚을 내고, 사랑하는 친구의 원조까지 구했다. 짐을 부치고 차표를 사고 바로 떠나려는 저녁, 대전의 판잣집 철거 우려가 있으니 출발을 중지하라는 기별을 받았다. 신앙적으로 다소의 반성이 우리 마음 가운데 일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의 불신, 편의, 욕심에서 된 일이 아닌가? 하나님이 이를 제지하심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짐도 다 갔으니, 그리고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떠날 수밖에" 하는 사람의 고집과 자포자기의 심정도 있어 예정대로 부산을 떠났다.
그 날 밤 우리는 차 중에서 짐을 잃고 꼬박 하룻밤을 속을 태웠다. 하나님은 이로써 우리에게 숨은 욕심을 버리기를 강요하시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차에서 내릴 때 짐은 그래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문제의 판잣집은 해약의 기회도 있었으나, 약방 경영을 하겠다는 초지(初志)를 관철하기 위해 모험적으로 구입을 단행했고, 곧 장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겨울만 어떻게 지나가기를 기다렸건만, 철거가 강력하게 추진되어, 장사는 차치하고 하루아침에 내 집이라던 판잣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끈질기게 다시 장소를 옮겨 장사를 계속했다. 그래도 하나님은 더욱 집요하게 우리의 희망을 거절하시고, 우리의 계획을 완전히 부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그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는 질풍과 우레로써 욥에게 나타나셨던 것과 같이, 심한 책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그래, 이때까지 너희가 벗고 지내고 굶고 지냈더냐? 정말 40이 넘도록 네 힘으로 살았더냐? 더욱이 전쟁통에 말이다. 그래, 이에 대한 감사는 고사하고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제 할 일도 안 하고 말이다. 먹고 입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내가 너희를 개, 돼지로 만들었을 것이 아니냐? 그러기에 믿으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믿으라고 말한 것 아니냐? 나를 믿는다, 성서를 공부한다 한 것도 다 거짓말이 아니냐?"
아! 매로써만 그의 사랑을 배우고, 진리를 배우고, 믿음과 순종을 배우는 나의 우둔함이여, 괴로움이여!
<성서연구> 제40호 (1953년 9·10월)
렘브란트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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