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생활 3년 만에 처음 서울에 들어섰다. 마포 종점에서 서대문, 종로, 남대문, 용산까지 돌아보았다. "아, 염병 앓고 난 사람 같은 서울!" 이것이 나의 사랑하는 딸, 예루살렘에 서울에 대한 직감이었다. 아현 마루턱에 선 나는 마음이 뜨거워져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눈물도 다 쓸 데 없는 일이다.
염병 치르고 난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병후의 섭생이다. 한 술의 음식도 절대 주의해야 한다. 앓던 시절을 생각 못하고 병이 나은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3년 전 엄동에 피난가던 당시를 회상할 일이다. 그때 짐을 싸고 집을 떠나 한강을 건너던 심정이 어떠했던가? 적어도 그 때 우리의 마음은 "재물도 집도 다 쓸 데 없습니다. 아, 이제 그저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정신을 차리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피난 생활은 매를 드신 하나님 앞에 의식무의식 중 "잘못했습니다." 하고 달라붙는 진정한 회개의 생활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자의로써 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 신앙생활의 장애가 되고 불신의 원인이 된 모든 욕심과 사람의 계획을 파탄 당하고, 자의와 자력을 떠나서 산 생활이었다. 아니, 피난 생활이야말로 진정 아버지께서 직접 우리를 살려준 생활이 아니었던가.
전날 서울을 떠날 때 곧 죽을 것 같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던가? 그때 누가 다시 이렇게 서울에 올 것을 예상했던가. 확실히 피난살이 3년 생활이야말로 하늘의 만나로 산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이었다. 우리의 한강 도하(渡河)와 환도(還都), 이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사건 "홍해의 구출"이 아닌가. 나는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이 구원과 사랑을 저버리고, 평화가 왔다고 하여, 염병 앓고 난 사람이 식탐하듯이, 토한 것을 먹는 개처럼, 욕심을 부리고 불평을 말하고 자기 계획을 세우고 자기 발로 걷기 시작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서울의 거리에 서서, 마치 단테 <신곡> 지옥편의 하부 지옥 디테의 성을 둘러싼 스티제의 연못에서 떠오르는 독기(毒氣)와도 같은, 하나님께 대한 이런 불신의 독기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집트의 고역(苦役)과 압박에서 탈출하여 홍해의 몰살에서 구출되고, 광야의 사지를 거쳐 목적지 가나안에 도착한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그 후 자기들 주위의 무수한 우상 숭배와 죄악과 음탕한 본능 생활의 유혹을 끝내 물리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정조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모스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의해, 전날 하나님에 의한 구출을 회상하고 북받치는 감사로써 신뢰와 신앙에 돌아간 데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집트의 고역, 홍해의 탈출, 광야의 시련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척추가 되고, 이스라엘 민족 신앙의 횃불이 되고, 그들의 이상과 천직을 향한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다.
역사가 토인비는 고난이야말로 인류 역사 진보의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난에서 자각하지 못하는 역사는, 슈펭글러가 말한, 그야말로 앞길이 결정된 쇠망의 역사일 뿐이다.
<성서연구> 제40호 (1953년 9·10월)
단테 <신곡> 지옥편 제14곡 "불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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