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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 서평

23.전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군대 <전쟁터로 간 책들>

by 안티고네 2018. 11. 9.

전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군대

 

몰리 굽틸 매닝 지음, 이종인 옮김, <전쟁터로 간 책들>(책과함께, 2016)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은 끔찍한 공포와 폭력적인 장면을 겪었다. 보병은 적의 총격을 견디면서 끝없는 진창을 걸어야 했고, 빗물 고인 참호에서 불편한 잠을 청해야 했다. 폭격기에 탑승한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다른 위험에 직면했다. 대공포탄이 비행기 날개에 구멍을 내는 상황에서도 일정한 항로로 비행해야 했고, 갑작스런 공중전을 벌여야 했으며, 승무원이 죽어나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이 때문에 B-24B-26날아다니는 관또는 과부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해군 장병도 마찬가지였다. 바다 속의 잠수함은 늘 위협적이었고, 적기가 나타나면 순양함이나 구축함은 사격연습장의 오리 신세가 되곤 했다.


독일의 프랑스 침공과 더불어 미국은 징병제를 시행했다. 194010, 21~35세의 미국 남성 1650만 명이 군복무를 위한 등록 절차를 밟았다. 훈련소에 입소한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민간인에서 군인으로의 신분 전환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많은 병사들이 아주 비참해 했고 외로움, 고립감,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병사들을 위한 오락거리가 필요했다.

미국도서관협회는 1천만 권의 책을 기증 받기 위해 전국국방도서캠페인(National Defense Book Campaign)을 계획했다. 캠페인이 시작되던 무렵인 194112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 의회는 즉각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갑자기 두 방면에서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비상시국이었다. 증오심과 복수심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이 커졌다. 미국이 왜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전국국방도서캠페인은 이제 승리도서캠페인(Victory Book Campaign)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캠페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부인의 격려를 받은 직후인 1942112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작가 크리스토퍼 몰리는 전쟁은 야전에서 이기기 전에 마음속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수십만 미군 병력이 훈련소를 떠나 전쟁터로 갔다. 1942년 초봄, 미군은 세계 곳곳에 배치되었다. 그들은 역경, 피로, 권태, 공포를 한꺼번에 마주해야 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죽음의 공포가 병사들을 짓눌렀다. 포탄과 파편은 병사들의 살을 찢었고, 사지를 잘라버렸다. 발아래 땅속에는 독일군이 매설한 지뢰들이 있었다. 발을 한번만 잘못 디뎌도 목숨이 날아갔다. 군인들은 지뢰 공포 때문에 제대한지 몇 년 지나서도 풀밭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풀밭을 피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에 오른 후에야 겨우 걸음을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병사들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오락은 책이었다. 책은 병사들의 정신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유도해서 전쟁의 파괴적인 국면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책은 오락거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은 치료 효과를 발휘하여 병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을 더 잘 견디게 만들어주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책이 전쟁의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위로를 준다고 인정했다. 독서는 사기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신경쇠약을 미연에 방지해주었다. 병사들은 책에서 용기, 결단, 희망, 자아의식, 그리고 전쟁의 허무를 견디게 해주는 힘을 얻었다.


19423, 출판사 대표 70여명이 전시도서협의회(Council on Books in Wartime)를 조직했다. 협의회의 목적은 책이 국가의 전쟁 수행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었다. 협의회는 표어를 이렇게 정했다. “책은 사상전의 무기다.” 그 결과 194310월에는 도서기증 캠페인을 중단하고, 군대가 매달 수백만 권의 페이퍼백을 직접 사들여 군인들에게 책을 공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기존의 기증 도서들은 크기와 무게 등에서 한계가 있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는 하드커버 양장본 대신 휴대하기 간편한 가벼운 책이 필요했다. 포켓북스 출판사는 이런 요청에 부응해 작은 판형의 책을 출간했다. 양장본을 고집하던 사람들도 페이퍼백이 전시의 물자 결핍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대안임을 인정했다.


그 결과 미국 출판계에 혁명이 일어났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렇게 선언했다. “1943년은 미국의 150년 출판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해였다.” 그렇게 해서 진중문고(Armed Services Edition)가 태어났다. 군복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책이었다. 문고판의 효시 격이다.

194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역하는 병사들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정부 자금으로 대학 교육 및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제정해달라고 연방 의회에 요청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교육과 기술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법이 마련되고 있다는 소식만큼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도 없을 겁니다.” 과연 그랬다.


19458월에서 19461월까지 540만 명의 육군과 해군이 전역했다. 개정된 제대군인원호법의 혜택을 알고 있던 이들은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떼 지어 등록했다. 1948년에는 대학에 입학한 참전용사가 90만 명에 달했다. 9년 동안 약 780만 명의 참전 용사들이 교육을 받거나 기술 훈련을 받았으며, 220만 명이 대학에 등록했다. 1947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대학생의 절반이 참전용사였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성적을 받았다. 일반 학생들은 참전용사들과 함께 받는 수업에 분노했다. 상대평가 방식에서 그들과 경쟁하여 좋은 성적을 받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일반 학생들은 참전용사들을 가리켜 평균 학점을 높이는 지겨운 인간들이라고 불렀다. 펜실베이니아 리하이 대학의 한 학생은 격분해서 말했다. “만날 그놈의 책, , ! 공부밖에 할 게 없는 저들을 따라잡으려면 죽을 맛이라고요.”


전쟁 중 산더미 같은 책이 배급된 덕분에, 많은 군인들은 독서와 공부에 관심과 흥미를 키웠다. 진중문고는 신문과 만화만 읽던 수백만 명의 군인들에게 좋은 책을 제공함으로써 훌륭한 독서 습관을 심어주었다. 1945년 봄 뉴욕 포스트는 이렇게 자랑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군대를 보유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참전용사들 중 다수는 이미 전선에서 플라톤, 셰익스피어, 디킨스 등을 독파한 뒤였다. 역사, 경영, 수학, 과학, 언론, 법률에 관한 독서도 익숙했다. 전역 후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자 그들은 전투 못지않게 학구적 활동도 잘 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폭탄이 터지는 참호 속에서도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했으니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