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의 어두운 공백
나가미네 시게토시(永嶺重敏) 지음, 송태욱 옮김 『독서 국민의 탄생』(푸른역사, 2010)
18세기 유럽에서는 범람하는 인쇄물로 인해 엘리트계층 사이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뜻밖에도 그것은 ‘독서 과잉’ 때문이었다. 엘리트들은 독서의 보편화, 특히 하층민의 독서량 증가가 가져올 위험을 우려했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했다. 글을 읽어봤자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게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무지’는 자비로운 신이 하층민의 비참함을 덜어 주기 위해 내려 주신 아편이었다.
지나친 독서는 마치 오늘날 지나친 텔레비전 시청이 일종의 문화적 해악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두려움을 일으켰다. 독서의 보편화를 개탄하는 사람들은 독서가 공중보건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18세기 말의 한 기록은 과도한 독서로 인한 신체적 영향으로 감기·두통·시력감퇴·발진·구토·관절염·빈혈·현기증·뇌일혈·폐질환·소화불량·변비·우울증 등을 열거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독서 열기의 확산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1800년께에 이르러 서유럽인은 대단히 집중적으로 독서를 하고 있었고, 책 읽기와 출판의 광범한 증가 속에 서유럽은 독서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나가미네 시게토시(永嶺重敏)의 『독서 국민의 탄생』은 메이지유신(1868) 직후 일본이 ‘책 읽는 국민’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메이지시대 초기에 사회 최하층인 인력거꾼이 일이 없는 막간 시간을 이용해 신문·잡지를 일상적으로 읽을 정도로 독서 습관이 모든 일본 국민의 몸에 배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하철 노숙자가 책 읽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책 사랑에 흠뻑 빠져 있는 오늘날 일본의 독서열은 19세기에 그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서양이 300년, 400년 걸려 이룩한 업적을 달성했다. 숨 가쁜 압축 고도성장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경제성장이 있었고, 반도체 등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수준을 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서의 영역만은 성장과정에서 생략됐다. 우리 역사에는 18~19세기 서양이 누렸던 것과 같은 ‘독서문화의 황금기’가 없다. 19세기 일본처럼 ‘독서 국민 탄생’의 역사적 경험도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의 독서율이 꼴찌 수준에 머무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19세기까지 한문을 쓰다가 20세기 전반에는 일본어를 국어로 상용(常用)해야 했던 우리 모국어의 슬픈 역사도 한몫했다. 우리가 제대로 한글을 사용한 것은 해방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해방 당시 13세 이상 인구 중 한글을 전혀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문맹자가 77%에 달했고, 195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군대에 입대한 후에야 한글을 익히고 부모님께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였다.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그러니 ‘본격적인’ 한글 독서는 이제 겨우 반세기에 불과하다.
꼭 책을 읽어야 하느냐,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읽는 텍스트의 양이 엄청난데 책 안 읽는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벤 버커츠는 『구텐베르크 엘레지』에서 인터넷이야말로 인쇄물이 제공해 주던 ‘수직적 경험’을 파괴한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책을 마주 대하고 앉아 있는 경험은 독자를 사색(思索)의 세계로 안내하고 자아를 발견하게 도와주지만 하이퍼텍스트가 제공하는 것은 ‘수평적 경험’으로서, 삶의 깊이나 자아성찰에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도서인 전자책이 우리 국민의 독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자책의 장점은 수천 권의 책을 단말기에 넣어 다닐 수 있는 휴대성과, 직접 온라인 전자책 서점에 접속해 콘텐트를 내려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선 안 샐까? 없던 책 읽기 습관이 전자책 있다고 생겨날 리 만무하다. 한글 사용의 역사가 짧은 만큼 한글 콘텐트의 양과 질이 영어·일본어 등 다른 언어권에 비해 터무니없이 빈약하다는 점도 아픈 현실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한다. 책을 통해 길을 찾고 인생을 바꾼 선인들의 검증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독서 문화의 황금기’도 ‘독서 국민의 탄생’도 경험한 적 없는 우리 역사의 공백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자칫 ‘길 잃은 영혼’이 넘쳐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터덕거리는 원인도 혹시 이 ‘어두운 공백’에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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