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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 서평

7. 성(姓)과 이름에 깃든 세계의 역사 <인명으로 보는 세계사>

by 안티고네 2017. 5. 14.


()과 이름에 깃든 세계의 역사


21세기연구회 지음, 이영주 옮김 <인명으로 보는 세계사>(시공사, 2002)

 

유럽에서는 16세기 이후 성()이 널리 쓰였지만 유대인은 예외였다. 그들은 마음대로 성을 쓸 수 없었다. 독일에서는 영주가 유대인에게 돈을 받고 성을 팔았다. 하지만 유대인 표가 나도록 식물과 금속 이름만을 쓰도록 했다. 1787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유대인에게 히브리어식 이름을 금하고 독일식 이름을 짓도록 강제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꽃이나 보석에서 따온 좋은 성을 가지려면 그에 상응하는 뇌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러므로 유대인 성인 로젠탈(Rosental, 장미의 계곡), 릴리엔탈(Liliental, 백합의 계곡), 블루멘탈(Blumental, 꽃의 계곡), 블루멘가르텐(Blumengarten, 화원), 압펠바움(Apfelbaum, 사과나무) 등은 우아해 보이지만 실은 유대인 차별이 빚어낸 비극적인 성이다. 그나마 돈 많은 유대인들은 그럴싸한 성이라도 얻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키가 크면 랑(Lang, 길다), 키가 작으면 클라인(Klein), 머리가 검으면 슈바르츠(Schwarz, 검다), 그리고 태어난 요일이나 계절에 따라 존타크(Sonntag, 일요일), 좀머(Sommer, 여름) 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름에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서양 세계에서 이름은 아무래도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지어졌다. 당연히 ?성경?에서 따온 이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피터(Peter)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기독교 세계에서 베드로는 교회의 초석이며 천국의 문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의 이름은 독일에서는 페터(Peter), 프랑스에서는 피에르(Pierre), 이탈리아에서는 피에트로(Pietro),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서는 페드로(Pedro), 러시아에서는 표트르(Pyotr)가 된다.


(John)은 히브리어로 야훼의 은혜를 의미한다. 존은 11세기 이후 영어권에서 널리 사용하던 이름으로, 16세기 중반 런던에서는 네 명 중 한 명이 존이었을 정도라고 한다. ?실낙원?으로 유명한 17세기 영국 시인 존 밀턴은 아버지도 존이었고 시인의 아들도 존이었다. 프랑스어의 장(Jean), 독일어의 요한/요하네스(Johann/Johannes), 러시아어의 이반(Ivan/Evan), 이탈리아어의 조반니(Giovanni), 스페인어의 후안(Juan) 등이 존에 상응한다. (Jack), 조니(Johnny/Johnnie)는 그 애칭이며, 여기에 상응하는 여자 이름은 조안(Joan), 조안나(Joanna), 제인(Jane), 재니트(Janet) 등이다. 존에서 파생된 성도 다양하다. 존슨(Johnson), 존스(Jones), 존스턴(Jonston), 잭슨(Jackson), 그리고 웨일즈 지방의 젠킨스(Jenkins), 네덜란드의 얀센(Jansen) 등이 존에서 파생된 성이다.


한때 우리나라 여성의 이름에 ()’()’을 붙이는 게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름에도 유행이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David)란 이름은 구약성서의 다윗에서 비롯되었다. 다윗은 분명 빛나는 이름이었지만 그에게는 인간적인 결점도 있었다. 신하의 아내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왕궁으로 불러들여 임신을 시킨 것이다. 청교도들은 이런 죄를 특히 싫어했다.


그러므로 미국의 초기 이민자들은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아이들에게 거의 붙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에 데이비드라는 이름이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된다. 1970~8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데이비드가 인기 리스트 상위권에 오른 것이다. 그 시절 큰 인기를 누렸던 록 가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덕분이다.


마리아(Maria)는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선호되던 여성 이름이다. 영어로 메리(Mary).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변화가 나타났다.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의 마리아 경배에 반감을 가졌다. 특히 피의 메리(Bloody Mary)’로 불렸던 잉글랜드 여왕 메리(헨리 8세의 딸)가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였기 때문에 한동안 이 이름을 전혀 쓰지 않았다. 한편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는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에서 볼 수 있듯이 마리아라는 이름을 많이 썼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 마리아 안토니아(Maria Antinia)는 프랑스의 루이 16세에게 시집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onette)였다.


모든 이름이 진지한 의도로 붙여진 것은 아니다. 미국의 흑인노예들에게는 주인의 어설픈 교양 또는 빈정거림 때문에 고대 로마의 인물이나 신의 이름, 또는 셰익스피어 작품 주인공들의 이름이 붙여지곤 했다. 남자 노예에게는 시저(카이사르), 폼피(폼페이우스), 주피터(유피테르), 스키피오 등이, 여자 노예에게는 다이애나, 비너스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별명이 이름으로 굳어진 예도 많다. 스마트, 레몬, 오렌지, 플로어(마루), 채트(수다쟁이), 펀치(일격) 등이 있다. 신랄한 빈정거림이 내포된 프린스(왕자) 같은 이름도 있었다. (8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팝가수 프린스가 떠오른다.) 흑인노예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또 이름 지은 사람의 인간성이 의심스러운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키 작은 노예를 일부러 제너럴(장군), 캡틴(함장)이라 부르거나, (), 듀크(공작), 비숍(주교)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경우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흘려듣는 이름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역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