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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번역

한.EU FTA 번역, 무엇이 문제였나

by 안티고네 2011. 4. 11.

한.EU FTA 번역, 무엇이 문제였나
작성자 작성일 2011/04/04
외부검증 부재.전문인력 부족 등 요인"번역시스템 개선 추진"..비준동의안 국회 험로 예고(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한글본에서 207곳에 달하는 오류가 발견됐다고 외교통상부가 4일 발표했다.

촉박한 시간, 외부검증 부재, 전문인력 부족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많은 오류가 빚어졌다는 것이 외교부 측의 설명. 외교부는 협정문 번역 시스템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오류 정정 후 한.EU FTA 비준동의안은 이달 국회에 다시 상정된다. 하지만 졸속번역 등을 문제삼은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국회 통과는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 번역 오류 207곳..중대 오류는 없어번역 오류의 유형은 ▲잘못된 번역 ▲잘못된 맞춤법 ▲번역 누락 ▲번역 첨가▲고유명사 표기 오류 등 5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잘못된 번역은 128건에 달했다. 예를 들어 `생전행위(inter vivos act)'를 `증여법'으로 번역하고, `이식(transplant)'을 `수혈'로 번역하는 식이다.

번역이 누락된 것도 47건에 달했다. 예컨대 경립종 옥수수(Zea indurate maize)'에서 `경립종'을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지적한 것처럼 부정문에서의 `어떠한(any)'을 번역 누락한 것이 많았다. 외교부는 이중 7건을 확인해 정정 조치했다.

이밖에 `공작기계(machine tools)'를 `공자기계'로 오타한 것처럼 잘못된 맞춤법이 16건, 영문본에 없는 번역을 첨가한 것이 12건, 고유명사 표기를 잘못한 것이4건이다.

다만 207건의 오류 중 중대한 오류는 없었다는 것이 외교부의 해명이다. 협정문의 실질적인 내용을 수정하는 `개정'이 아니라, 착오를 바로잡는 `정정' 수준의 오류였다는 설명이다.

◇ 외부검증 등 없어..번역시스템 개선 `박차'중대한 오류는 없었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경제 대계'라고 할 수 있는 FTA 협정문 번역 중 200건이 넘는 오류가 빚어졌다는 것은 간과하기 힘든 잘못이라고 할수 있다.

여론의 질타를 당한 외교부는 번역 과정의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를 이날발표했다.

우선 시간이 촉박했다. 2009년 7월 협상 타결부터 같은해 11월 한글본 공개까지4개월 동안 총 1천177쪽의 영문본을 번역해야 했다. 지나치게 서두른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외부 검증도 없었다. 예산 제약 등으로 인해 내부 번역에만 매달렸다. 민간 법률회사의 검증을 받은 부분에서는 한 곳의 오류도 없었다는 것이 외부 검증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내부 번역에도 불구하고 통상교섭본부 내에는 번역 및 검독을 전담하는전문가 조직이 없었다.

외교부는 이날 발표에서 책임소재는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 외교부는 대신 한글본 번역 오류와 관련해 감사를 진행 중이며, 감사 결과 책임의 경중에 따라 관계자에 대한 문책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나아가 번역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전문 번역인력 3명을 채용하고 통상협정 번역검독팀을 신설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협정문 번역은 `한글본 초벌 번역→관계부처 실무협의→외부 전문기관검독ㆍ국민의견 접수→번역검독팀 자체 검독→법제처 심사→최종 한글본 완성'을 거치게 된다.

◇"7월 비준 희망"..국회 여야 격돌 예고외교부는 기존에 제출했던 비준동의안을 철회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새비준동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한.EU FTA가 예정대로 오는 7월 잠정 발효돼야 한다는 소신은 굽히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일본 대지진 및 중동 정세 변화로 2분기 이후 대외 무역여건이 쉽지 않다는 점 등을 감안해 우리 업계의 기대대로 7월 한.EU FTA가 잠정 발효되기를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는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칼날을 세우던 민주당에 이어 자유선진당마저 "제대로 된 검증작업 없이 4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오히려 국익을 해칠 수 있다"며 국회 차원의 한글본 검증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촉구했다.

다만 야당의 반발이 FTA 통과 자체를 무산시키자는 것이 아닌만큼 4월 비준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 외교부의 판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야당 의원들도 한.EU FTA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으므로 다소 난항이 겪더라도 4월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통과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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