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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 칼럼·글

[그때 오늘62] 영국 가이폭스 데이 … 극심한 갈등도 세월 흐르면 ‘축제’

by 안티고네 2009. 11. 10.
[그때 오늘] 영국 가이폭스 데이 … 극심한 갈등도 세월 흐르면 ‘축제’로
가이 폭스 데이는 원래 가톨릭과 신교 간 종교 대립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정월대보름 쥐불놀이처럼 전통놀이로 자리 잡았다.
영국인은 해마다 11월 5일을 ‘가이 폭스 데이(Guyfawkes Day)’라 부르며 기념한다. 가이 폭스는 1605년에 일어난 ‘화약음모 사건’의 행동대장 이름이다. 이 사건에서 일단의 가톨릭 교도들은 영국 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그들은 제임스 왕이 의회에 출석하는 1605년 11월 5일에 의사당 지하에서 36배럴의 화약을 폭파시키려 했다. 음모 성공과 더불어 초래될 커다란 혼란 속에 외국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영국의 가톨릭을 부흥시킬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가이 폭스가 거사 전날인 11월 4일 저녁에 의사당 지하에서 화약 더미와 함께 발각되었고, 그는 고문 끝에 사건의 전모를 털어놓게 되었다. 그는 이듬해 1월 31일 처형됐다.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1603년 영국 왕으로 즉위한 제임스 1세는 원래 종교 문제에서 관용적이었다. 특히 청교도보다 가톨릭 교도에게 더 너그러운 편이어서, 가톨릭 교도들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1604년에 소집된 첫 의회가 가톨릭에 대한 적대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자 국왕도 가톨릭에 대한 억압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가톨릭 교도들이 화약음모 사건을 일으켰다. 영국은 이미 16세기에 종교개혁을 거친 신교 국가였고, 신교도들에게 이 사건은 가톨릭의 사악함을 드러낸 흉악무도한 일이었다. 의회는 법령을 통해 11월 5일을 국가적 기념일로 정해 해마다 행사를 치렀고, 그것은 영국 최초의 공식 국경일이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해마다 11월 5일이면 영국 각지의 도시와 마을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가이 폭스의 인형을 끌고 다니며 조롱하다 밤이 되면 불태우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인형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어른들에게 불꽃놀이에 필요한 돈을 얻어낸다. 캐나다·남아프리카·뉴질랜드 등 영연방에 속한 나라들에서도 제각기 축제가 행해지고 있다.

화약음모 사건은 400여 년 전에는 극한적 이념 대립을 드러낸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정치적 의미는 퇴색된 채 아마추어 불꽃놀이 디자이너들이 실험적인 디스플레이를 하거나 각종 불놀이를 하는 순수한 의미의 축제가 되었다. 좀처럼 가실 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분열적 상황도 시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그라질 때가 올 것이다.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질주하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