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오늘] 영국 가이폭스 데이 … 극심한 갈등도 세월 흐르면 ‘축제’로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1603년 영국 왕으로 즉위한 제임스 1세는 원래 종교 문제에서 관용적이었다. 특히 청교도보다 가톨릭 교도에게 더 너그러운 편이어서, 가톨릭 교도들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1604년에 소집된 첫 의회가 가톨릭에 대한 적대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자 국왕도 가톨릭에 대한 억압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가톨릭 교도들이 화약음모 사건을 일으켰다. 영국은 이미 16세기에 종교개혁을 거친 신교 국가였고, 신교도들에게 이 사건은 가톨릭의 사악함을 드러낸 흉악무도한 일이었다. 의회는 법령을 통해 11월 5일을 국가적 기념일로 정해 해마다 행사를 치렀고, 그것은 영국 최초의 공식 국경일이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해마다 11월 5일이면 영국 각지의 도시와 마을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가이 폭스의 인형을 끌고 다니며 조롱하다 밤이 되면 불태우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인형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어른들에게 불꽃놀이에 필요한 돈을 얻어낸다. 캐나다·남아프리카·뉴질랜드 등 영연방에 속한 나라들에서도 제각기 축제가 행해지고 있다. 화약음모 사건은 400여 년 전에는 극한적 이념 대립을 드러낸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정치적 의미는 퇴색된 채 아마추어 불꽃놀이 디자이너들이 실험적인 디스플레이를 하거나 각종 불놀이를 하는 순수한 의미의 축제가 되었다. 좀처럼 가실 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분열적 상황도 시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그라질 때가 올 것이다.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질주하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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