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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번역

[박상익]<기획회의> ‘역사적 알리바이’ 만들기

by 안티고네 2007. 3. 25.

격주간 <기획회의> 2007년 4월 5일자 

 

특집 ‘번역가가 말하는 번역’에 기고한 글입니다.

 

200자 원고지 35장 분량입니다.

 

 

‘역사적 알리바이’ 만들기

 

내가 번역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시절 고전독서회에서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이탈리아어를 읽을 수 없어서 정평 있는 영역본 몇 종류를 구해서 우리말 번역본을 함께 읽었다. 내가 읽던 우리말 <신곡>은 이탈리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의 어느 대학 이탈리아어과에 재직하는 교수님이 번역한 것이었다. 그러나 몇 종류의 영역본과 우리말 번역을 대조하며 읽으면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에 띄는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오역들 때문에 도저히 내용 파악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평범한 일개 대학생 주제에 저명 대학교수가 번역한 책에서 숱한 오역·졸역·비문을 발견한 느낌은 한마디로 ‘충격과 경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장 극심한 ‘배신감’으로 연결되었다. 교수니, 박사니, 지식인이니 하는 잘난 명사들의 마각(馬脚)을 본 셈이었다.


1985년 김용옥 교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민음사)가 출간되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서점에서 초판 1쇄를 사들고 밤새워 게걸스럽게 읽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동양학’이라기보다는 ‘번역’이었다.

 

번역을 토대로 하지 않은 모든 지적 활동은 공중누각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썼다 하더라도, 관계된 고전의 번역이 없이는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 속에 축적되어가지 아니한다. 그것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없기 때문이다. …… 우리가 서양을 한 세기를 접했다고 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전집의 권위 있는 번역 하나가 존재하는가? …… 지금까지의 논리 전개는 우리나라 학계에 고질화 되어 있는 번역 경시의 통념을 광정(匡正)하자는데 초점이 있다. …… 제아무리 영어 도사들이 대고 속출해도 그들이 유려한 우리말로 그들의 학식을 표현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우리’ 문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34-36쪽)

 

평소에 답답하게 생각했던 문제를 속 시원하게 밝혀주는 내용이었다. 읽으면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용옥 교수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번역을 학문적 성취의 영역에서 아예 제외해놓는 우리 학계 관행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우리 학계의 ‘무지와 후진성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악습’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각 대학의 동양학 부문에서 나오는 석사, 박사 학위논문을 번역 위주로 지도해줄 것을 제안한다. 번역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주는 것은 일본은 물론이고 서양의 여러 대학들에서도 지극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수학한 하버드대학에서도 동양학 관계 박사학위 논문의 반 이상이 번역으로 점유되고 있다고 밝힌다.

 


박사학위 논문에 번역 더하기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에 관한 연구이다. 대학 시절 고전 독서회에서 밀턴의 <실낙원>을 흥미롭게 읽었고, 서양사 공부를 하면서 문학·종교 쪽을 곁눈질 해왔던 터라 밀턴 산문의 최고봉인 <아레오파기티카>를 논문 주제로 정한 것이다. 번역에 대한 평소의 문제의식에다가 김용옥 교수의 영향까지 받은 터라, 나는 박사 논문을 쓰게 된다면 당연히 해당 텍스트의 번역 작업도 함께 진행하겠노라고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논문 작성 전 단계에서 원문에 대한 번역 및 철저한 주석 작업은 필수 불가결했다. 논문 작성을 위해서는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가장 중요했고, 번역·주석 작업 이상으로 텍스트를 잘 이해하는 방법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텍스트에 대한 초벌 수준의 번역·주석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이차 자료들(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에 대한 서양 학자들의 저서 및 논문)을 수집하며 읽었다. 이차 자료를 읽는 과정이 주석 작업을 하는데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런 다음 학위논문을 써서 통과시켰다.

 

학위논문을 마친 후 다시 여러 해 동안 번역 완성도를 높이는 일에 매달렸다. 번역 작업은 난공사 중의 난공사였다. 350년 전 영어라서 그런지 현대 영어와는 문법, 어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제껏 읽어본 영어 중 밀턴의 문장만큼 난해한 것이 없었다. 한 문장을 번역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매달려야 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번역·주석·연구의 세 박자를 갖춘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소나무, 1999)가 나오게 되었다.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논문 쓰기와 번역 작업을 모두 경험해본 입장에서 논문과 번역 어느 쪽이 더 힘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번역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논문쓰기와 번역작업의 어려움을 비교한 김용옥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관한 논문’을 쓰는 일은 그것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없더라도 가능하다.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 수도 있고, 또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동초서초(東抄西抄)하여 적당히 일관된 논리의 구색만 갖추면 훌륭한 논문이 될 수도 있다. 허나 번역의 경우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작품의 문자 그대로 ‘완전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 그야말로 에누리 없이 그 번역자의 스칼라십이 완전히 노출된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39쪽)

 


기지촌 지식인과 한국어의 미래

 

우리나라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국가 차원의 번역 지원은 1999년부터 본격 시행되기 시작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동서양명저번역 지원 사업이 전부이다. 2002, 2003, 2004년에는 예산이 15억 원씩 책정되다가 2005년에는 2억이 늘어 17억 원으로 증액되었다. 선정된 과제 수는 각각 42건(2002년), 52건(2003년), 52건(2004년)이었다. 2002년부터 3년간 146 과제가 선정되었으니 해마다 평균 50 과제 정도가 예산지원을 받는 셈이다.

 

4천 5백만 국민을 위한 정신적 양식을 생산하는데 투입되는 정부 1년 예산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이다.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이 19세기말 메이지유신을 전후하여 정부에 번역국을 설치하고 수 천 종의 서양 고전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하여 번역하던 수준과 비교하면 실로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거지에게 동전 몇 푼 쥐어주는 식’이다. (일본이 19세기 말에 번역한 서양 고전 중 아직도 우리말로 번역 안 된 책이 수두룩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우리 언어로 만들어진 문화’를 꽃피우는 데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문화적 패배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모국어로 독자적인 우리 문화를 꽃피워 세계 역사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제국의 문화적 변방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주체에 대한 성찰 없이 중심권 문화에 동화되지 못해 안달하는 듯한 모습이다. ‘기지촌 지식인 근성’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싶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우리 사회의 잘 나간다는 소위 ‘주류 지식인들’ 사이에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2005년 4월 12일 오후 서울 플라자호텔 별관에서 개최된 ‘LG경제연구원’ 창립 19주년 세미나에는 서울대 송병락 명예교수와 재정경제부 박병원 차관보, 그리고 베인&컴퍼니 한국지사 이성용 대표가 패널로 초청됐다. 세 사람 모두 우리나라의 소위 상류층과 주류를 대표하는 친재벌적 관료와 학자들이다. 이날 송병락 교수와 박병원 차관보에 이어 세 번째 토론에 나선 이성용 대표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미국 하버드대 MBA를 거쳤다는 사회자의 소개를 받은 이성용 대표는 ‘한국에서 서비스산업이 잘 육성되지 않는 것은 언어 문제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영어공용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만약 영어공용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의 IT·서비스산업은 ‘국제시장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100년을 내다본다면 한국어는 경쟁력이 없다’고 놀라운 주장을 하기도 했다.


 

‘앞으로 100년을 내다본다면 한국어는 경쟁력이 없다’는 말이 마치 모국어에 대한 저주처럼 들린다. 동시에 그의 지적이 정확하게 우리의 미래를 꿰뚫어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섬뜩한 느낌이 든다. 사실 특단의 조치 없이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100년 후의 한국어는 이성용 대표의 주장대로 십중팔구 경쟁력을 잃고 말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번역, 사기는 치지 말자

 

나는 인류의 고전적인 텍스트를 우리말로 바꾸어 ‘우리의 고전’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인문학 연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탱해 줄 ‘텍스트’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현실을 미루어 볼 때, 고전적 문헌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번역·주석’이 균형감 있게 나란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번역 활성화를 위해 현 단계에서 실현가능한 방법은 인문 번역의 의병운동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학 쪽의 번역 실태는 인문학보다 더 심각하다고 하지만, 이 문제는 논외로 하겠다.) 임진왜란 때 왕과 조정이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 나라를 구한 것은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이었다. 의병 이야기를 하고 보니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생각난다.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의병운동을 하다 잡힌 수많은 사람들을 거기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의병 지휘관을 했다는 자들이 감옥 안에서 하는 행동거지를 보니 그들 대부분이 도적놈과 다를 바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백범은 개탄을 한다. “저런 도적놈들이 의병이라고 나섰으니 어떻게 일본군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 하고 말이다.

 

요컨대 의병을 해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말이다. 아무리 대접을 못 받는 번역 일이라지만 독자들은 오로지 그 결과물로 번역자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무성의한 번역을 함부로 출간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얼마 전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 여성 아나운서의 대리번역 논란이 이 경우에 포함된다. 인기인을 앞세운 전형적인 스타 마케팅이다. 일반 독자들은 이 사건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출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매우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이 대학원생을 동원하여 원서 한 권을 여러 토막으로 나누어 번역시킨 다음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주섬주섬 긁어모아 버젓이 교수 이름으로 출판하는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텔레비전에 자주 얼굴 비치는 유명 교수가 번역한 책은 일단 대리번역을 의심하라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출판, 그것은 사업은 사업이로되 ‘문화운동’과 ‘장사’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좀 특이한 사업이다. 문화운동에만 치우치면 수지를 맞추지 못해 망하기 일쑤지만, 그렇다고 장사에만 치우치면 지식 정보 제공의 사명을 지닌 출판인의 자존심을 찾을 길 없다. 그래서일까. 저급한 상업출판으로 번 돈을 부끄러워한 나머지, 돈 안 되는 인문 출판에 기꺼이 투자하려고 하는 출판인도 더러 있다. (흔히 인문 출판은 출판의 꽃이라 하지 않던가). 이렇듯 출판은 장사는 장사로되 사명감과 자긍심을 잃어서는 안 되는 쉽지 않은 사업이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에 빠져 있는 출판 현실을 알고나 하는 말이냐’ ‘영세 출판인의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한가한 사명감 타령으로 매도하지 말라’고 볼멘소리 할 출판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다. 백 보를 양보해 문화적 사명이니 뭐니 고상한 소리 걷어치우고, 출판 사업은 오로지 돈벌이를 위한 장사일 뿐이라고 치자. 요즘은 농산물, 공산품에도 원산지 표시가 의무로 되어 있다.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표시 문제가 부각된 것도 이것이 상거래의 기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번역하지도 않은(또는 부분적으로만 기여한) 책에 버젓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출판하는 행위는 무엇이란 말인가. 위조 상표를 붙인 짝퉁 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제시하는 요구조건은 딱 하나다. 저잣거리에서 통용되는 상거래의 기본이라도 지켜달라는 것이다. 돈벌이, 장사, 다 좋다. 하지만 제발 사기는 치지 말자는 것이다.

 


100년 뒤 후손들에게 욕먹지 않도록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이 한국 문화의 특징이라 할 정도로 척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더러 못난 조상을 탓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갔다. 공은 우리에게 넘겨졌다. 후손들에게 우리가 어떤 조상으로 평가받을 것인지를 고민할 때가 온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100년 후 한국어가 경쟁력을 잃게 될 경우,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를 못난 조상으로 지목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오랜 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번역에 관한 생각을 책으로 묶어 2006년 초 <번역은 반역인가>(푸른역사)를 출간했다. 나는 개인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번역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조직이나 유력자의 ‘힘’에 의존할 배경도 없고 또 그럴 의향도 없다. 한 ‘개인’으로서 직접 독자 대중에게 호소해보려는 의도로 책을 쓴 것이다. 집필하는 동안, 한편으로는 이 책을 통해 번역 문제가 우리 사회의 진지한 의제로 다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야무진’ 희망도 품어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책 한 권으로 어떻게 도도한 흐름을 바꿀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가 압도적으로 밀어닥쳤다.

 

하지만 나의 집필 작업이 마냥 무의미하지는 않으리라는, 오기 비슷한 것이 불끈 생긴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이 적어도 ‘역사적 알리바이’ 만들기는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시대에 모국어를 저주하고 망치는 자들의 대열에 서기를 거부한 사람이 없지 않았다는 ‘물증’ 하나는 후대에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무리 못났어도 100년 뒤 후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꼴은 면해야 할 것 아닌가. 어쭙잖지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역사의식이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