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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번역

[펌]번역은 반역인가

by 안티고네 2007. 1. 28.

내가 2006년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의 목록을 죽 보니 번역서가 국내 창작물보다 훨씬 많더군. 내가 읽은 책들을 블로그에 전부 다 올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 블로그만 봐도 그런 사실이 잘 드러나지. 회사 안에서 번역서를 지겨워하면서도 회사 밖에서조차 번역서를 끼고 살았던 셈이다. 번역서로 점철된 내 인생...이라는 문장이 방금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물론 이것은 순간적으로 나를 감싼 좌절감과 수치심과 무기력함이 만들어 낸 과장된 문장이다.

 

어쨌든 나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마다 엄청나게 많은 번역서를 만나고 있고 그러니까 그만큼 번역이란 게 중요한 거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번역을 개털쯤으로 여기니 실력도 없는 아나운서를 얼굴 마담 번역자로 내세우는 일이 일어나는 거다. 올해 초에 나온 이 책 <번역은 반역인가>가 조금만 더 늦게 나왔으면 <마시멜로 이야기> 사건도 한 꼭지를 차지할 뻔했다. 굳이 이 사건이 안 들어 있더라도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나오고 있는 번역서에 대한 고발과 자성이 가득하다. 이 책의 부제는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그냥 보고서도 아니고 체험적 보고서인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그동안 번역 현장에서 활동하며 굵직굵직한 인문서들을 우리말로 옮긴 박상익 교수이기 때문이다. 그가 번역한 책들은 내 취향을 뛰어넘는 진중한 것들이라 내가 한 권도 안 읽어 보긴 했지만.

 

이 책은 모두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번역의 역사’는 일본, 중국, 유럽, 이슬람 등 외국의 번역사를 소개한다. 2장 ‘슬픈 모국어’는 우리나라 번역 문화의 잘못된 현실과 원인을 짚는다. 3장 ‘번역의 실재’는 번역가가 갖춰야 할 자질과 번역가가 처해 있는 환경을 이야기한다. 번역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읽으면 특히 좋을 것 같다. 4장 ‘책의 세계’는 우리나라의 도서관 문화와 번역의 미래를 논한다.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이슬람이 번역하여 학문을 발전시키고 나중에 12세기 유럽이 이것을 다시 번역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본의 번역사는 좀 놀라웠다. 일본이 메이지 시대부터 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양의 번역 덕분이었다. 정부 안에 번역국을 두고 서양의 책들을 조직적으로 번역할 정도였다. 자유, 평등, 권리, 인권, 정의, 민주주의, 시간, 공간, 의무, 책임, 도덕, 원리, 철학, 사회학, 미학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 중 상당수가 일본 지식인들이 번역 과정에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에 비해 우리 번역 문화는 어떠한가. 전문가가 번역했다는 책에 대학생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오역이 가득하다. 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번역을 맡기고 이를 짜깁기해 책을 낸다. 영어판이나 일본어판을 가지고 하는 중역도 여전히 잦다. 그렇다고 번역가만을 탓할 수는 없다. 번역을 연구 성과로 인정해 주지 않으니 교수들이 일부러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설 리 만무하다. 일부 스타 번역가를 제외하고는 번역으로만 생계를 해결하기가 힘들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물론 없다. 이러니 번역이 번역이 아니라 원작에 대한 ‘반역’의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주요 고전들은 여전히 번역되지 않은 것이 태반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번역서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박상익 교수는 너무 부족하다고 한다. 들어 보니 그 말씀도 맞네요.


박상익 교수는 실명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문제가 된 번역가 이름을 굳이 써 놓지는 않았더라도 책 제목을 다 밝혔으니 검색만 해 보면 번역가 이름이 금방 나온다. <다빈치 코드> 같은 베스트셀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저자가 주간동아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번역 경시는 지식인의 반역’이란 글에 누리꾼들이 단 댓글들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참고 문헌에는 책에 관한 책들이 많이 실려 있어 이런 책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무척 유용하다. <잔혹한 책읽기>, <번역사 산책>, <소설> 등의 제목을 내 필독서 목록에 올려놓았다.

 

나는 내년에도 번역서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번역에서는 원작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충실성’과 번역문의 ‘가독성’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141쪽) 나로 말하자면 가독성에 심하게 집착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나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다. 가독성을 핑계 삼아 얼굴 한 번 맞댄 적 없는 원작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가독성이란 것이 결국 나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인데. 나도 번역을 개털쯤으로 다루는 사람 중의 한 명인가 보다. 또다시 밀려드는 부끄러움.

 

모국어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번역 작업 또한 그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는 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지적 권위주의에 물든 일부 지식인은 우리말이 세상 만물의 현상을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는 언어라느니 하며 딴소리를 하곤 한다. 그러나 번역이 왕성해야 우리말도 풍부해지고, 우리말이 풍부해져야 세상의 지식이 우리의 지식으로 육화되는 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정신적·지적 역량은 향상되고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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