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아리랑> 속의 김교신과 무교회주의
…… 고서완은 기독교 신자로서 작은 독립 사회를 이룩하고 있었다. 그가 실현시킨 사회는 비록 작을지라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농토를 전부 집단화 시키고, 사람들을 최대한 끌어들였다. 그가 표방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박애생활이었다. 관에서 보기에는 종교운동이었고 예수교인들의 공동생활이었다.
사실 고서완은 그 공동생산, 공동소비의 조직을 이끌면서 관에서 시비 걸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비정치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그 조직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그건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를 체험한 고서완다운 대응방법이었다. 관에서 물리는 세금 다 내고, 반일이나 배일활동을 하지 않으니 관에서는 눈독을 들이고 있으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만약 그 조직을 강압적으로 해체시키면 기독교 탄압으로 비화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조직은 함께 생산하고 함께 소비만 하는 단순 사회가 아니었다. 기독교를 통해서 미묘하게 민족의식이 전파되고 있었다.
고서완은 기독교의 민족종교화를 실행하고 있는 김교신과 관계를 맺고 그가 발행하는 <성서조선>이란 월간지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묶고 있었다. 공회당은 있어도 교회당은 없는 예수교인들의 마을, 그것이 고서완이 이룩한 세계였다. 처음에 교회 겸 공회당으로 지었던 건물을 공회당으로만 쓰는 것을 보면 고서완이 얼마나 김교신의 영향을 받은 무교회주의자인지 알 수 있었다.
……
정도규는 일단 한시름 놓고 집에서 이삼일 쉬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전해져 왔다.
“고 선생님이 체포되었습니다.”
이경욱의 말이었다.
아니, 무슨 일로?”
“예, 성서조선 사건으로 김교신 선생께서 체포되시고, 전국의 고정 독자들까지 가택수색을 하고 사상을 조사한다고 잡아간 것입니다.”
“이거 미안한데, 성서조선 사건이란 게 뭐요?”
전혀 모르는 사건이라 정도규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 성서조선 이번 3월호(1942년)의 권두언에서 조선의 민족혼을 고취하고 반일사상을 전파했다고 잡지를 폐간시키고 주필 김교신 선생을 비롯해서 함석헌 같은 연루자 13명을 체포한 것입니다.”
“조선의 민족혼을 고취했다……” 이 험한 시절에 참 놀랍다는 생각을 하며 정도규는 그 말을 곱씹다가, “그 3월호를 좀 볼 수 있소?” 고개를 치켜들며 이경욱에게 물었다.
“가택수색에서 뺏겼습니다.”
이경욱이 침통하게 말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갑시다, 군산으로.”
정도규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김교신은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식민지 교회의 타락상과 교권주의에 반기를 든 무교회주의자였다. 그는 조선 기독교의 식민지성을 거부하며 조선의 기독교는 조선민족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민족종교론을 내세웠고, 그 실천을 위해 월간지 <성서조선>을 발간해왔던 것이다.
공산당도 조선공산당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 다른 특이한 것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기독교도 조선김치 냄새가 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밤 청년회 성서반에서 세계일주 한다는 미국 종교인의 침입을 당하여 일좌가 혼란에 빠졌다. 내가 불운하여 아직 경의를 표할만한 미국종교인에 접하지 못하였음을 탄하였더니, 오늘 또다시 세계일주식의 미국 기독자를 대하니…… 치기, 젖 냄새 분분한 미국식 기독교! 조선 기독교가 완전히 발육되려면 우선 온갖 미국과의 관계를 그 교회와 교육기관으로부터 절연하여야 하리라. 미국 능사란 1왈 황금, 2왈 스포츠, 3왈 토키(유성영화)
김교신은 직접 쓴 이런 글들을 거침없이 <성서조선>에다 실었다. 그러니 미국의 원조 아래 운영되고 있는 교회들은 그를 이단자로 몰아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실현시키고자 하는 기독교의 민족종교화 정신은 결국 조선의 독립에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투철한 민족정신은 기독교의 주요 교파들이 신사참배라는 종교적 굴욕을 받아들이는 상황 속에서 끝끝내 신사참배는 물론이고 창씨개명도 거부했다.
<아리랑>(해냄) 4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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