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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감자 씻기 교육

by 안티고네 2000. 12. 22.


해마다 3, 4월 입학 철이 되면 나는 언제나 김교신 선생이 생시에 성서 강의 시간에 심한 아이러니로써 비판하시던 현대 교육에 대한 말씀이 생각난다. 선생은 말씀하시기를, “요새 교육은 한 섬 들이 통에다가 감자를 퍼 넣고 여기에 굵은 작대기를 넣어 휘둘러 씻으면 감자는 모두 껍질이 벗겨지고 모가 다 떨어져나가서 동글동글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특히 이 “동글동글하게”라고 말씀하실 때, 단테의 초상과 닮으신 선생의 얼굴 그 입가에 현대인에 대한 심한 경멸의 표정이 번지고 있었던 것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과연 우리의 교육이란 타고난, 두드러지고 세찬 사람의 개성을 아주 죽이고, 하늘로 뻗는 청소년들의 이상을 땅에 끌어내리고, 순수하고 예리한 그들의 양심과 도덕의 감수성을 똥물같이 흐리게 하고, 천부적인 모든 위대한 가능성을 무섭게도 꺾어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오직 대량생산으로 요사이 소위 국산품 이상으로 사람을 마구 만들어 정신과 영적 생명을 완전히 죽여 버린다. 키에르케고르는 목사를 살인자라고 했지만, 과연 오늘날 교육자도 또한 그러하다.

금년에도 우리는 대부분의 학교가 학급을 증설하고 2차, 3차로 학생을 모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감자 씻는 식의 마구잡이 교육이 되는 중요한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결국 그들이 교육에 자신만만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또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 자체를 위한 열성에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오직 그들은 교육을 장사로서, 그것도 오늘날 제일 수지맞는 사업으로서 할 뿐이다. 이리하여 증설과 함께 마치 거세한 사람 모양으로 시설과 외관은 커지고 수지도 틀림없이 맞을 것이다. 반면 선생의 질은 자연 떨어지고 한 학교의 교육 정신을 대표해야 할 교장은 꼭 노동판의 십장 꼴이 되고 만다.

옛 사람들은 선생의 배설물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는데, 요즘은 아마 교사들의 뱃속만큼 기름이 낀 것도 별로 없을 것이다. 과거 일제 시대에도 요리 집 수입의 대부분은 교육계에서, 특히 서울 시내 사립학교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요새는 일년 중 수개월간의 국가 경제를 교육 재정이 뒤흔드는 형편이다. 요새 대폿집에서 요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목으로 매일 밤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추기에 분주한 자들은 실로 교사 계급인가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기생을 잘 달래고 춤 잘 추기로는 신학교 출신 교사가 가장 능숙하다는 소문까지 들리니, 이야말로 더욱 언어도단이다. 과연 그들은 먹는 것으로 교육의 힘을 삼는 것인가? 이러니 인격 교육, 정신 교육이 되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고, 훈육이라고 하여 마치 생도들을 재크 런던의 동물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매로써 다스리려고 하고, 퇴학으로 협박하고, 그렇지 않으면 축음기판이나 약장수 같은 지식의 주입으로 무엇이 될 줄 알고 있다.

이리하여 결국 그들의 교육이란 그들의 정신 그대로 장사속 백 퍼센트의 입학 준비, 출가 준비, 취직 준비로써 겨우 부지되어가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사람의 피를 팔아먹는 인간들이 아닌가. 아니, 사람의 정신을 죽이는 자들이 아닌가?

그러나 교육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내적 도야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의 체득이나 지식의 전달, 연구라 해도, 그것은 깊은 의미에서 인격의 독창성, 진실성 등과 밀접하게 관계되는 것이다. 지식이란 결코 백과사전식의 그것은 아닌 것이다. 학문은 진리의 탐구, 인식이며, 교육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인격 활동의 중심을 이루는 인성의 도야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인격 형성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이성에 의한 선악의 판단력과 만인에 대한 동정심과 의지적인 선한 행동에 실천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인격적으로 살리지 못하는 교육이란 그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근본적으로 실패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교사 자신의 인격에 기인하는 것이다.

전날 내한했던 미국 교육 사절단은 “미국 교육자의 대부분은 진실한 크리스천이며, 특히 초등학교 교사들은 미국에서도 가장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들”이라고 했다. 과연 교육을 장사로, 직업으로 하는 나라는 화 있을진저! 여기에서 우리는 교육자들의 인격적인 깊은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나 이 기업화 한 기성 교육기관, 그리고 쉬파리나 진딧물 같은 교육자들의 자각과 반성이란 기대하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앞으로 소수의 진실하고 사명적인 교육자들이 이 썩은 기성 교육기관을 박차고 나와, 영국의 이튼 또는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처럼 독특한 정신과 기풍을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정신적인 교육의 길을 독립적으로 개척하는 일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천만 명의 우중(愚衆)보다 한 두 명의 참 인간을 만드는 교육만이 진정한 교육이다. 이것이 또한 국가와 민족을 살릴 수 있다. 소돔 고모라는 열 사람 의인이 없어서 망했다고 한다. 교육자의 깊은 각성을 촉구함이 간절하다.

『성서연구』제 59호 (195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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