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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신앙의 성장

by 안티고네 2000. 9. 11.

신앙은 생명이다. 그것이 크건 작건 간에 여하튼 예수의 속죄로써 시작되는 새로운 생명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라야 한다. 자라지 못하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그러면 신앙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보통 교회에 나가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다든가, 성당에 나가 미사를 올린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신학 연구를 한다든가 성서 연구를 한다든가 하는 것으로 신앙이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열심이나 노력을 신앙을 키울 수 있다고, 또는 열심이나 노력 자체가 곧 신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신앙은 신앙에 의해서만 자란다. 이는 조선 사람이 조선 사람을 낳고, 중국 사람이 중국 사람을 낳는 것과 같은, 일종의 신앙 생리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바울 선생은 "믿음에서 믿음으로"라고 했다(로마 1: 17). 이 말씀은, 신앙은 신앙에서 출발하여 신앙을 통해 신앙으로 완성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출발도 신앙이요, 과정도 신앙이요, 완성도 신앙임을 말한 것이다.

신앙이란 한마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다. 우리의 모든 타산과 욕심, 그리고 좋고 나쁨을 떠나, 손해와 실패와 고통을 감수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예수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말한 것은, 그가 금욕주의자로서 부(富) 자체를 죄로 본 것이 아니었다. 부가 순종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점은 명예나 권력도 다 마찬가지이다. 예수가 백부장의 신앙일 절찬한 것은 그가 권력을 가진 자이면서도 그런 놀라운 신앙을 가진 데 있다(마태 8: 5 이하).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고향 우르를 떠나라" 하니 떠났고, "타향 이집트에 가라" 하니 갔고, "가나안으로 돌아가라" 하니 돌아갔고, "외아들을 바쳐라" 하니 바쳤다. 이 아브라함의 절대 순종은 그의 신앙적인 생활 속에서 점점 자라서, 마침내 자식을 바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하나님은 결코 믿음을 강요하는 폭군은 아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에 대하여 그는 당신의 마음을 여시고 진리와 모든 기이한 영의 은사도 주신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 내용을 풍성하게 하여 더욱 순종에서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실패와 손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풍요를 발견하고, 고난 가운데서 그의 사랑을 배우고, 육체의 병 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을 접하고, 도덕적 절망에서 신생을 발견한다. "태가 약할 때 강하다"(고린도후서 12: 10)고 한 바울의 역설적인 진리도, 실패와 모욕의 절정인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한 예수의 생애가 갖는 역설도, 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의 순종의 절정에서 받은 진리요 은혜였다.

그러므로 신앙은 교리나 의식에 맞추고, 신학을 배워 자라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앞지르는 인간적인 열심이나 노력, 선행 따위로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므로 또한 성장 없는 신앙은 순종 않는 신앙인 것이다.

<성서연구> 제35호 (195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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