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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번역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한계

by 안티고네 2018. 1. 24.

페친이신 철학자 이종철 교수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한계를 지적한 구절이 특히 와닿는군요. (백성을 위한다는 <목민심서>가 한글로 쓰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지금 우리는 한문 대신 영어. 예나 지금이나 못난건 똑같네요. 종살이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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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학술 심포지움에서 김슬옹 교수가 지적했던 것처럼 '조선의 실학자들이 왜 한글로 글을 쓰지 않았는가'라는 문제를 통렬히 반성해볼 필요도 있다. 한글은 중화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주성의 표현이고, 봉건조선의 폐쇄적 계급구조를 타파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표현이 될 수도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왜 그들이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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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대해]
페친 박상익 교수가 <번역청> 설립하자고 국민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 역시 한국의 학계와 출판업계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박교수의 이런 운동에 절대적으로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오는 말이 있다. 세종이 우수한 문자 '한글'을 발명했는데 그걸로 담을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페친 김슬옹 교수는 한글 전도사라고 할만큼 훈민정음을 알리는데 혼신을 기울이고 있다. 왜 한글이라는 뛰어난 도구가 있는데 그것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고 한문이나 영어와 같은 외국어로 표현하려고들 할까?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유와 사상을 규정한다. 언어 사대주의가 우리의 사유와 의식의 사대주의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진실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따진다면 퇴계나 율곡의 뛰어난 저작들, 다산을 위시한 실학자들의 방대한 저작들도 한국의 사상이고 문화라고 단정짓기 힘들지 모른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기 전이고, 한자 외에는 우리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단이 없다면 그들의 한문저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큰 뜻을 그들이 몰랐고, 한글이 조선의 정치와 사상 그리고 문화 등에 미칠 수 있는 엄청난 영향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알고서도 그랬다면 그들은 결국 중화사상을 공고히 하고 소중화 조선의 봉건체제를 벗어나지 벗어나지 못한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말처럼 갓쓴 중국인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언젠가 한 학술 심포지움에서 김슬옹 교수가 지적했던 것처럼 '조선의 실학자들이 왜 한글로 글을 쓰지 않았는가'라는 문제를 통렬히 반성해볼 필요도 있다. 한글은 중화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주성의 표현이고, 봉건조선의 폐쇄적 계급구조를 타파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표현이 될 수도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왜 그들이 몰랐을까?

문자를 발명하고 세계 최고의 인쇄술을 자랑하면 무엇하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뛰어난 발명 도구를 가지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실제로 종교혁명의 강력한 촉발제 역할을 했다. 유럽의 뛰어난 사상가들은 중세의 보편적 언어인 라틴어를 벗어나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등 모국어로 저술하면서 새로운 시대와 사상을 열어갈 수 있었다. 영국의 근대 사상가인 홉즈나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한 프랑스의 데카르트가 그랬고, 독일의 뛰어난 소설가 괴테가 모국어로 글을 쓰고 그의 뒤를 이은 철학자들이 독일어로 글을 쓰면서 획기적으로 그들의 사상과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더라도 그것을 모국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일반 대중들의 의식과 삶에 영향을 주는데 한계가 있다. 나는 영독불 3개 국어의 책들을 번역해보았지만 책을 읽고 사유하는데는 외국어의 절대적 한계를 느끼고 있다. 언어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에서 조선의 사상가들과 유럽의 계몽 사상가들 사이의 커다란 차이와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제대로 된 철학 저술을 내놓지 못했지만 한 가지 자부심은 있다. 나는 중요한 시기에 학교를 10년 씩이나 떠나면서 학문적으로 단절도 오고 연구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80년 대 사회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철학 등의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좋은 번역서들이 나올 때 나름대로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번역돼서 나온 수많은 책들이 그 시대의 지적 갈증을 풀고 시대적 변화의 욕구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당시 헤겔의 명저 <정신현상학>을 J. Hyppolite가 주석한 책 1권을 서울대 김상환 교수와 공역으로 냈고, 2권은 요즘 유행하는 1987년 겨울에 도봉산 산기슭에서 고생 고생하며 혼자 번역해서 출간했다. 이 책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분야에서 공부를 하는 이들의 필독서 역할을 하고 있고, 철학과 인문학계의 많은 중진들도 이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 당시의 지평에서 그만한 역할을 했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양서들의 뛰어난 번역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번역과 관련된 중요한 의미는 박교수의 번역청 설립과 관련된 청원을 살펴보면 된다. 이제라도 우수한 문자 '한글'에 주목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한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번역청을 설립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번역청 #번역청을설립하라


국민청원은 여기에서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8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