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살아있는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최인훈, <광장>(문학과지성사, 2007)
4.19 혁명이 있고나서 반년 뒤 1960년 11월 <새벽>지에 처음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발표 직후부터 문단 안팎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고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현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이다. 그래서일까. 소설 <광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대화는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 읽어도 낡지 않는 ‘현재성’을 보여준다. 기독교에 대한 설명은 정곡을 찌른다. “외국 같은 덴 기독교가 뭐니 뭐니 해도 정치의 밑바닥을 흐르는 맑은 물 같은 몫을 하잖아요? 정치의 오물과 찌꺼기가 아무리 쏟아져도 다 삼키고 다 실어가 버리거든요. 도시로 치면 서양의 정치사회는 하수도 시설이 잘 돼 있단 말이에요. 사람이 똥오줌을 만들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정치에도 똥과 오줌은 할 수 없지요. 거기까지는 좋아요. 하지만 하수도와 청소차를 마련해야 하지 않아요? 한국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가득 쌓였어요.”
물론 오늘날 서양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헤브라이즘의 2천년 전통은 서양 사회의 하수도 기능을 충실히 해내면서 서양 문명의 도덕성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서양정신사의 두 축으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꼽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도덕성을 끌어올리기는커녕 정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월간 <기독교사상>의 편집책임을 맡았던 한 목회자는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한국 기독교를 이렇게 질타한다.
“예전에는 예수쟁이라고 하면 싫어하면서도 그 신실성은 믿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금융거래에서도 목사, 장로, 교인이라고 하면 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든다고 합니다. 사회적인 신뢰, 도덕적인 신뢰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명색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종교 없는 일반인보다 훨씬 낮은 도덕적 평가를 받고 있어 은행 대출 심사에서도 훨씬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빛과 소금’이기는커녕 도덕 파탄자로 지탄받는 딱한 모습이다. 기독교를 사회악으로, 교회를 혐오 시설로 바라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나마 내부고발자가 있다는데서 희망을 싹을 보아야 할까.
이 소설의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광장’이 죽어버린 우리 사회를 개탄하는 부분일 것이다. “저희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였어요. 국고금을 덜컥한 정치인을 아버지로 가진 인텔리 따님의 말이 풍기는 수수께끼는 여기 있는 겁니다. 오, 좋은 아버지.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개인만 있고 국가는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각기의 밀실은 신분에 맞춰서 그런 대로 푸짐합니다. 개미처럼 물어다 가꾸니까요. 좋은 아버지, 불란서로 유학 보내 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 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밀실에서 정부고위직 인사는 물론이고, 문화계, 체육계, 재계를 멋대로 쥐락펴락한 비선실세 최순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김기춘(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공부 잘하고 수재 소리 듣던 몇몇 이름도 떠오른다. 그들도 집에 가면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 좋은 남편, 좋은 아내일 것이다. 그들이 비선실세와 장단을 맞추며 국민을 상대로 갑질을 해대는 동안, 광장에는 권력에 빌붙는 기생충들만 넘쳐났다.
작가는 우리 사회 지배 엘리트들의 전근대성을 질타한다. “서양에 가서 소위 민주주의를 배웠다는 놈들이 돌아와서는 자기 몇 대조가 무슨 판서, 무슨 참판을 지냈다는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인민의 등에 올라앉아 외국에서 맞춘 알른거리는 구둣발로 그들을 걷어차고 있습니다.” 김기춘은 그가 모신 박근혜 대통령을 ‘주군’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 ‘주군이 하명하시길’이란 전근대적 표현을 즐겨 썼다고 한다. 몸은 21세기에 살지만 정신은 19세기에 머물던 우리 시대 엘리트들의 씁쓸한 면모다.
소설 말미에서 주인공 명준은 광장 없는 남한 사회의 좋은 점은 “타락할 수 있는 자유와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광장> 이후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다. 광장을 폐쇄하고 밀실에서 타락의 자유를 한껏 누린 그들의 낡은 행태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출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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