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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번역

아레오파기티카 출간 비하인드 스토리

by 안티고네 2017. 5. 23.



나남출판사 조상호 사장이 지훈상을 시상했다는 뉴스를 읽고, 문득 생각이 나서 나남과의 일화 한토막.

90년대말, <아레오파기티카>를 탈고한 후 출판사를 찾아헤매고 있었다. 돈이 안되는 학술서이기도 하고, 변방의 듣보 저자이기도 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나남이 언론학 전문 출판사라서 기대를 걸고 연락을 했다. 내 원고가 번역, 주석, 연구의 세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며 출판을 설득했지만 보기좋게 딱지 맞았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나남은 그 무렵 이미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임상원 교수 외 2명이 공동작업으로 아레오파기티카의 번역서를 출간하려고 한창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단독'으로 '번역,주석,연구' 삼박자로 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재빨리 임상원 교수 1인의 단독저서로 포장하고, 내 편집 구상을 채용해, 번역,주석,연구의 삼박자를 갖춘 체재로 1998년 12월 20일 출간했다. (변방의 저자가 단독으로 내는 책을, 명문대 교수가 공저로 출간하는건 체면이 안 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찾다가 찾다가 결국 <서양문명의 역사>를 출간했던 인연이 있던 소나무와 겨우 연결이 돼서. 1999년 2월 5일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를 출간했다. 조건이 있었다. 인세를 한푼도 받지 않는 조건이었다. (자료비로 차 한대 값을 썼는데 말이다. 세상이 그러하다. 내게 이런 경우는 처음이자 마지막.) 게다가 꾸물대는 사이에 간발의 차로 최초 번역이라는 타이틀도 놓쳤다.

얼마 후 이 책은 절판되었고, 인간사랑 출판사의 제안으로 반년간 작업 끝에 2016년 12월 30일 복간했다. 소나무와 나남 출간 두 번역본의 오류를 수정한 [전면개정판]이다. 완성도를 끌어올렸으니 당분간은 인간사랑 판이 <아레오파기티카>의 표준 번역본이 될 것이다.

[한줄요약] 한국에서 학술서 출판은 가망없는 열정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