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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선생

개인적 판단(Private Judgement) <성서조선> 제27호(1931년 4월) 권두문

by 안티고네 2015. 7. 17.

개인적 판단(Private Judgement)

<성서조선> 27(19314) 권두문

번역문인 탓인지 <김교신전집>에는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한길사 판 <영웅숭배론>에서 해당 부분을 뽑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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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개인적 판단이라는 것은 사실 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현상이 아니라, 다만 그 시대로서 새로운 것이었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나 특이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허위와 외관을 버리고 진리와 진실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유사 이래 모든 종류의 개혁과 진정한 가르침은 항상 그러했습니다. 개인적 판단의 자유란 생각하면 이 세상에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단테는 자기의 눈을 도려내지도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가톨릭 신앙 안에서 자유로이 볼 수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혹슈트라텐(Hochstraten)*, 테첼, 에크 박사(Dr. Eck)** 같은 많은 초라한 인간들이 가톨릭 신앙의 노예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판단의 자유말입니까? 어떤 종류의 쇠사슬이나 외적 폭력도 사람의 영혼이 그것을 믿거나 믿지 않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판단이란 그 자신도 끌 수 없는 빛입니다. 그는 오직 신의 은총에 의해, 그 빛으로 지배하고 신앙할 것입니다! 가장 지독한 궤변가인 벨라르민(Bellarmine)***은 맹목적 신앙과 피동적 복종을 역설했지만, 그도 일종의 확신에 의해 자신의 신념을 가질 권리를 스스로 버렸음에 틀림없습니다. 그의 개인적 판단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수단으로서 그것을 지시한 것입니다.

 

진정한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반드시 개인적 판단의 권리가 온전한 힘을 지니고 존재합니다. 진정한 인간은 그의 모든 판단력을 가지고, 그리고 그의 모든 빛과 분별을 가지고, 믿고 있으며 항상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거짓된 사람은 자기가 믿는다고 믿고자애쓸 따름이며,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후자에 대해서는 화 있을지어다!”라고 말했고, 전자에 대해서는 잘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결코 새로운 말이 아니며, 늘 회자되었던 옛 격언을 다시 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이번에도 역시 진실하라, 성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호메트는 그의 온 마음으로 믿었고, 오딘도 그의 온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오딘과 오딘 종교의 모든 진정한신봉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개인적 판단으로 그렇게 판단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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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슈트라텐(Jacob von Hochstraten). 도미니쿠스 수도사이자 종교재판관으로서 루터를 화형에 처할 것을 주장한 인물.

**에크(Johann Eck, 1486-1543). 독일의 로마 카톨릭 신학자.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칼슈타트(Karlstadt) 및 루터와 논쟁을 벌였다(1519).

***벨라르민(Robert Beellarmine, 1542-1621). 이탈리아의 예수회 소속 신학자. 루뱅(Louvain)대학 신학 교수(1569-76). 추기경(1599).

카푸아(Capua) 대주교(1602-05). 종교개혁에 맞서 카톨릭 정통을 옹호한 인물이며, 갈릴레오(Galileo)의 저작을 정죄하는데 가담했다.

 

---토머스 칼라일 지음, 박상익 옮김, <영웅숭배론>(한길사, 2003), 208-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