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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읽기

<한국과 일본의 초상화> 이성낙 의학박사

by 안티고네 2015. 5. 7.

<한국과 일본의 초상화> 이성낙 의학박사


"필자가 조선 시대 초상화를 분석 연구한 결과, 우리 초상화에서는 다양한 피부 병변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석 자료 518점 중 73점(14.09%)의 초상화만이 아무런 피부 증상 없는, 즉 깨끗한 얼굴 피부를 보였을 뿐입니다. 요컨대 우리 초상화 중 약 85%가 각종 ‘비정상적인 것’을 숨김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시(斜視), 실명(失明) 외에도 노인성 병변(病變)인 ‘검버섯’ 같은 흔한 피부 병변은 물론 결코 ‘아름답지 않은’ 천연두반흔(天然痘瘢痕, 마마 자국)과 함께 피사인(被寫人)이 만성간경화증(慢性肝硬化症)을 앓다가 사망했음을 임상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초상화의 얼굴을 짙은 흑갈색으로 묘사한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즉 조선 초상화에서는 티끌만큼도 ‘흠’을 감추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세계 초상 미술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초상화 문화는 일본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초상화는 우리의 것과 달라도 이상하리만큼 너무 다릅니다. 일본 초상화에서는 어떤 피부 병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高僧의 초상화 예외). 이는 일본 초상화 속의 얼굴이 예외 없이 하얗게 분장(粉牆)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 사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의 초상화(도쿄 고다이지 소장)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의 초상화(교토 대학교 박물관 소장)를 들 수 있는데, 둘 모두 안면을 백색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두 피사인의 사인(死因)을 추적해보면 만성간경화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초상화처럼 얼굴을 황달(黃疸)이나 흑달(黑疸)을 직감할 수 있는 흑갈색으로 묘사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 초상화와 달리 일본 초상화에서는 ‘숨김의 의도’를 강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초상화를 비교하면, 조선 초상화는 화가가 피사인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근거 바탕(evidence based) 정신에 입각해 그렸고, 일본 초상화는 화가가 ‘있음에도 못 본 듯’ 피사인을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전통 화법(畵法)과 사뭇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註: 필자의 박사 학위 논문 <조선 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연구> 중에서)

 

여기서 필자는 근래 우리 사회의 거침없는 ‘까발리기’ 정서와 조선 시대 화가의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초상화 기법을 조선의 선비 사회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있는 것을 외면하고, 보이는 것을 못 본 척하는’ 정서가 강합니다.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이런 오랜 미장(美裝) 의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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