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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 자료

[단상]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by 안티고네 2001. 5. 11.

1970년대 초 상당한 수의 소련 지식인들이 영적인 거듭남을 경험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서방 세계에서는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당시 서방 세계로 망명 온 한 소련 지식인은, 소련의 작가, 화가, 음악가들 중에서 영적인 문제에 매달려보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서방측에서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소련에선 전 인민을 대상으로 종교에 반대하는 세뇌 교육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테고, 복음이나 그 밖의 성경은 물론이고, 기독교에 관련된 서적이라곤 거의 남아 있지 않을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러자 그 망명 지식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련 당국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금하는 것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소련 공산당 정부, 근대에 들어 기독교 신앙에 대해 가장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 이 두 작가의 책을 미처 금서 조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 이건 문학이니까요. 공산 국가에도 문학은 인정되고 있었고, 소련은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전 세계에 자랑할만한, 두 러시아 작가의 위대한 문학 작품을 금서로 만들 생각은 미처 못했던 것입니다.

인문학이 기독교 신앙 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서양 사회에 기독교의 전통이 얼마나 속속들이 배어들어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루터보다 오히려 단테, 밀턴이 더 위대하다는 평도 있기는 합니다. 루터 같은 인물의 저작은 기왕에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 또는 이미 기독교 신자인 사람들이 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단테나 밀턴은 경우가 다릅니다. 물론 크리스천들도 읽습니다만,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그 문학성 때문에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문학 작품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에 눈을 뜨고 신앙에 들어갈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문학 인구가 좀 많습니까?

다음 칼럼을 봐도, 종교 칼럼의 독자 수가 많아봤자 1천여 명 정도인데, 문학 쪽은 가입 독자 수가 2만 명이 넘는 칼럼도 있습니다.

우리도 좀더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과거 70·80년대에 우리나라 TV에서 방영되었던 <초원의 집> 같은 드라마를 우리 작가의 손으로 쓰는 때가 와야 비로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찰스 잉걸스 부부, 그리고 메리, 로라, 캐시 등 세 자매가 엮어 가는 그 드라마는, 한 편 한 편이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방송 작가 중에 크리스천이 꽤 있는 걸로 압니다만, 저는 그만한 수준의 드라마를 아직 못 봤습니다.)


저는, 크리스토퍼 도슨, 아널드 토인비에 버금가는 역사학자가 나와줘야만 비로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토인비의 경우, 비록 형식적인 성공회 신자이기는 하지만, 그의 역저 <역사의 연구>는, 역사학이 아니라 역사신학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책 앞 부분을 읽으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저는, 19세기 영국의 자유당 당수였던 윌리엄 글래드스턴 같은 정치인에 필적하는 인물이 나와야만 비로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글래드스턴은 4차례나 영국 수상을 역임한 크리스천 정치인이었습니다. 빈민과 창녀들에 대해 남다른 배려를 베풀었던 19세기의 명재상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말합니다.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기독교는 아직은 수박이 덜 된, 이를테면 호박에 줄그은 수준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런지요?

그 날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