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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진리의 토론

by 안티고네 2000. 10. 22.

요사이 세간에, 특히 교회인 간에 무교회의 분쟁·분열을 운운하고, "무교회도 조선에서는 별수 없더라" 또는 "무교회로도 조선인의 당파 근성은 퇴치할 수 없어"하며, 혹은 손뼉을 치고 혹은 실망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한편 무교회 신앙자들 사이에서도 이를 크게 우려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다 지나친 걱정이고 쓸데없는 소리이다. 도대체 분열 운운하는 그대들은 무교회를 어떻게 알았던가? 교회로 알고, 단체로 알고, 조직으로 알았던가? 무교회도 교회가 있고, 노회·총회가 있는 줄 알았던가? 무교회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도대체 분열 운운이 있을 수 없다. 원래가 일인일파(一人一派)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교회에도 신앙 논의, 진리의 토론은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적어도 신앙만을, 진리만을 살기 위해 인위적인 모든 요소들을 버린 무교회에, 신앙의 공론조차 허락지 않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죽은 신학과 교리와 신조와 전통과 교권에 의하지 않고, 오직 성서 진리의 토론과 탐구, 순수한 신앙 양심과 산 신앙 체험과 진실한 도덕적인 생활로써 신앙 생활을 끌고 나가려는 무교회에, 신앙 논의, 진리의 토론마저 봉쇄하는 것은 무교회 신앙의 발전과 성장을 부정하고 이를 사지(死地)에 몰아넣는 일이다.

무교회 신앙에 논의가 있고 토론이 있는 것은 신앙이 살아있고, 체험이 전개되고, 생활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진리의 체험 및 소화에 대한 진리 자체로써 하는 테스트일 따름이다.

이점 사실 교회에는 진리의 논의, 신앙 토론은 없다. 그들의 신앙은 교리이고 신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리는 신학이고 헌법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양심보다 교황과 교회에 굴복한다. 도덕보다도 전통과 교권에 복종한다. 그러므로 저들에게는 순수한 체험적인 진리의 논의는 없다. 있는 것은 정치적인 교파 싸움뿐이다. 주도권 쟁탈전, 세력과 지위 쟁탈전, 교회당 쟁탈전, 신도 쟁탈전이다. 구호물자 쟁탈전, 미국 달러 쟁탈전이다. 혹은 박봉의 목사와 돈 많은 장로의 싸움, 심지어는 찬양대원 쟁탈전이다.

그리고 순수한 개인적인 진리의 논의에는 제명(除名)이나 파문이 있을 수 없고, 우정의 파괴가 필요치 않으며, 다만 정정당당한 언로에 의한 공적인 논의가 있을 뿐이다. 나타난 진리 자체로써 흑백이 판단될 뿐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욕심으로 하는 파쟁에는 온갖 중상과 비난과 모략과 싸움, 폭력, 심지어는 폭력까지 자행된다. 이는 확실히 진실 추구의, 진리 추구의 싸움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조선 기독교가 사는 길은, 조선 왕조 이래의 우리의 고질인 정치적 감투욕에 불과한 파쟁이, 신자 각자의 체험적인 신앙과 진리의 토론으로 활발하게 변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성서연구> 제43호 (1954년 2·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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