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평구 선생

<노평구전집> 침략자가 패배하는 이유

by 안티고네 2000. 8. 25.

인민군이 남한을 침략한지 이제 1년이다. 실로 감개가 무량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되는 것은, 침략이란 그렇게 쉽사리 마음대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채 40년도 못되는 내 생애에서 침략자는 모두 패배를 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실패로 돌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참패로 끝났으며, 러·일전쟁은 그 당시 전 세계가 두려워했던 러시아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중·일전쟁 역시 군국주의 일본이 고배를 마셨다. 이 정도면 다른 사소한 예는 더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듯 승리를 위해 침략을 저지르는 자가 패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 신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물론 그들의 교만과 불의를 하나님이 용납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상 침략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구실에 불과하고, 실제는 침략자란 언제나 자신의 교만과 힘과 욕심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하나님과 양심의 종교는 언제나 침략자의 미움을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이탈리아에서 자행된 종교 탄압, 일본의 기독교 핍박 등이 모두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침략자의 패배를, 그들의 교만과 불의를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은 결과라고, 너무 공식화 시켜서 인과적으로 간단히 생각할 일도 아니다. 역사상 예외적으로 침략이 실패하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계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다. 그리고 침략자와 피침략자 모두 인격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둘째로, 우리는 군사적 침략이 갖는 깊은 섭리사적 의미를 탐색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일단 침략을 당하면 무력한 약자는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다. 약하면 약할수록 싸움이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의식 무의식중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호소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잊어서는 안될 점은, 침략자가 하나님에 대해 교만한데 반해, 피침략자는 자신이 침략 당하는 원인을 침략자에게 돌리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돌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불의와 죄악을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도쿄(東京)에 있을 때, 영국에서 온 분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가 있다. 전쟁 발발과 함께 영국 국민들이 독일이나 일본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보다는, 이를 자신들의 죄악의 결과라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며 통곡하더라는 것이다. 당시 나는 침략자인 일본의 기독교 사회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없었던 것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했지만, 실로 여기에 교만한 침략자가 패하는 중요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군신(軍神)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적의 패배를 기원하는 전승(戰勝)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철저한 도덕적 회개를 요구한다. 유대인의 바빌론 포수는 바로 이런 회개의 과정을 거쳐 그들의 유일신 신앙과 전도민족으로서의 민족 사명을 자각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때 나는 실로 두려움을 금할 길 없다. 민족상잔의 고난 가운데 당연히 있어야 할 도덕적 회개는 고사하고, 이 한없는 부도덕, 불신, 죄악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중병자의 무절제, 가난뱅이의 게으름과도 같은 것으로, 강자의 교만보다 한술 더 뜨는, 하나님에 대한 더러운 악질적인 교만인 것이다. 독일 역사가 니부르(Niebuhr)는, 모든 국가와 민족의 패망은 자살이라고 말했다. 적의 침략 같은 외부 조건보다는 내부 원인, 즉 도덕적 부패로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전 세계를 돌아보고 온 한 일본인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미국은 한국전에 참전한 국가로서, 풍기가 문란한 유럽이나 일본과는 달리, 긴장한 가운데 불미한 음악 같은 것도 별로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처한 유대 민족이 70년 동안이나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사건의 깊은 의미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민족사를 생각할 때 실로 착잡한 심정이며, 국민에게 특히 위정자들에게 간곡한 경고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민족사에 대한 사명감의 자각을 빈다.

그리고 끝으로, 침략자가 패배하는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 자신이 결코 전쟁 자체를 원치 않으신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전쟁을 시작하는 침략자를 패배시켜 인류에게 절대 평화의 실천을 기대하는 것이다.

<성서연구> 제24호 (1951년 8월)





렘브란트 <예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