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아니, 충고한다. "그렇게 말끝마다 양심, 양심 하지 말라. 양심이 무슨 너 혼자의 특허나 되느냐? 사실 털어놓고 말하면 양심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사회에 나가 발벗고 일하는 우리야말로 금일 조선 사회에서 너보다는 훨씬 양심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양심대로 해서는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니 할 수 없지 않느냐."
나는 이 말을 듣고 내가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을 양심 없는 동물같이 생각한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사실 나는 스스로, 양심은 유물론자들의 말처럼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한낱 습관이나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나 역시 도덕이니 양심이니 하고 살 필요 없이, 이를 팽개치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 나는 내 생각이야말로 무서운 악마의 유혹이었음을 알고 혼자 몸서리치는 오한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한가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양심대로 해서는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내게 그 말을 한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성공이라 하는가? 양심을 물리치고 거짓과 속임수로 하는 치부가 성공인가? 아니다, 그것은 도둑이 되고 사기꾼이 된 것일 뿐이다. 양심을 거스르는 정치가, 그는 국가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 앞에 넘어지게 만드는 국적일 뿐이다. 도대체 양심을 떠난 성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다 거짓이고 죄악이다. 왜냐고 묻는가?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는 자는 모두 악마의 소리를 듣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활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에 그래 양심에 충실하여 굶어죽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 단 하나라고 있었다면 사회가 이 꼴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는가? 양심의 소리는 의인에게 3, 4대 후까지 축복을 약속한 하나님의 음성임을. 아,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기독교인아! 너는 하나님보다도 물질을 더 믿는 존재가 되었구나.
참 성공이란 양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이기는 것이다. 그 날에, 그 심판 날에 너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너의 증인이 될 것이다(로마서 2: 15-16)
<성서연구> 제24호 (1951년 8월)
샤갈 <십계판을 부수는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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