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년 전의 섬뜩한 예언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 덕, 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 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정치는 부패한 독재정치보다 그 자체로도 나쁘지는 않지만 국민성에는 더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랑자, 극빈자 등 노동의 기회가 극히 제한된 계층 또는 구걸하지 않으면 훔치거나 굶어야 하는 계층이 선거권을 갖게 되면 파괴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가난으로 고통받고 타락한 계층의 손에 정치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마치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 옥수수밭에 풀어놓는 것과 같으며 삼손의 눈을 빼고 국민 생활이라는 기둥에 팔을 비끄러 매는 것과 같다.
권력의 승계가 세습이나 추첨 —고대 공화국에서는 이런 제도가 있었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현명하고 정의로운 권력자가 더러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지난 세기의 영국처럼 의회가 귀족층과 가까운 한 기관에 불과한 경우에는, 대중과 분명하게 격리된 부패한 과두정은 국민성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존속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대중의 마음 속에서는 권력과 부패가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이 세습되지도 않고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국민에 의한 정부가 최악, 최저질의 전제정부로 변화하는 현상은 부의 불평등 분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데 이는 결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헨리 죠지, <진보와 빈곤(1879)> (김윤상 역, 비봉출판사) pp.51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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