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나의 영적인 눈은 항상 열려 있었다. 나는 젊어서부터 하늘의 영감을 받은 시인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었다. 내 나이 스물한 살에 쓴 시 〈그리스도 탄생하신 날 아침에(On the Morning of Christ's Nativity)〉는 내가 시인으로서 성년을 맞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후대에 기억될 것이다.
이 시에서 나는 위대한 히브리 예언자 이사야를 인용하면서, 나의 목소리가 제단의 숯불로 정화되어, 천사와 함께 그리스도의 탄생을 노래하기를 기도했다. 모두 알다시피 이사야는 《구약성서》 최대의 예언자로서, 하늘로부터 소명을 받은 뒤 고국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을 시작했다. 그는 환상을 통해 스랍의 하나가 제단의 숯불을 가져와 자신의 부정한 입술을 정화하는 장면을 경험한 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해 갈 것인가?”라는 신의 부름에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라고 응답했다(〈이사야서〉 6장 8절).
나는 이 시에서 예언자 이사야에게 빗대 나 자신의 내밀한 종교적 체험을 고백하는 한편, 나 자신이 조국 잉글랜드에 진리의 빛을 가져다줄 예언자적 사명이 있음을 선포하고 싶었다. 나는 주님께서 내게 시인의 재능을 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를 통해 조국을 참된 신앙의 진리와 빛으로 충만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나의 야심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 정신에 근거를 둔 위대한 영어 서사시를 쓰겠다는 계획을 갖게 되었다."
--박상익 지음, <밀턴평전>(푸른역사, 2008)
---------------------
밀턴은 이미 21살 때 조국 잉글랜드를 위한 예언자적 사명을 자각했다. 그 결과물이 <실낙원>이다.
'존 밀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숙한 시인'이자 '낯선 혁명가' (0) | 2022.11.17 |
---|---|
한국어로 쓰인 유일의 <밀턴평전> 드디어 절판되다. (0) | 2022.11.07 |
이심전심 (0) | 2020.08.22 |
실낙원의 천문학 (0) | 2020.08.06 |
'실낙원' 번역서, 주석서 (0) | 2020.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