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나도 몰라’
김교신의 이념을 초월한 태도는 근본주의에 휩쓸리다시피 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에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신앙고백에 대해서입니다. 바울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로마서 10:10). 그런데 제 주변을 관찰해보면, 오늘날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일종의 율법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기’, 이것 자체가 하나의 율법적 행위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의 실천을 자랑거리로 삼고, 종교적 오만과 독선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사상가인 토머스 칼라일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칼라일은 과연 우리가 자신이 믿는다고 하는 그 믿음을 얼마만큼이나 관철시키고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칼라일은 겉으로 드러나는 고백이나 주장이 진정한 종교를 보증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신앙고백을 한다고 해서 기독교인임을 입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백이나 주장은 종교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칼라일은, 종교란 사람이 가장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칼라일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가 진정으로 믿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 자신에게도 고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이런 유행가 가사도 있습니다만, 사실 사람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믿는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많은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만,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기 인식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노평구 선생은 평소 ‘인간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알려 하느냐?’고 호통을 치곤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성찰 없는 신앙이 내포하는 위험성을 경계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문사철(文史哲)을 인문학의 세 기둥이라고 합니다만, 인문학의 목적도 소크라테스가 말한 ‘인간 인식’에 있습니다. 문사철 세 분야는 각기 가는 길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목적은 같습니다. 물론 현대에 와서 지엽말단으로 흘러 많이 변질되기는 했지만 본래 목적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기’가 일종의 율법적 행위가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확인할 길이 없고,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입으로 시인하기인데, 과연 입으로 시인한다고 다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갖고 그 사람을 판단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리고 한 입으로 이 말 저 말 지껄이는 우리의 입만 갖고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아닌 한 그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나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우리의 삶의 열매가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사실 성경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도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말씀 하셨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는 어떠합니까?
여기에서 월간 『기독교사상』 서진한 주간의 글을 잠깐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2003년 3월호). 서진한 주간에 의하면 한국 사회에는 오래 전부터 기독교인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고착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초대 기독교 시대에는 예수쟁이라고 하면 다들 싫어하면서도 그 신실성은 믿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금융거래에서도 목사, 장로, 교인이라고 하면, 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사회적인 신뢰, 도덕적인 신뢰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제 주위를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과거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승려들을 부를 때 ‘놈’자를 붙여 부르곤 했습니다만, 요즘은 기독교 목사들에게도 그런 칭호를 붙이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됩니다.
열매 없이 겉으로만 기독교인임을 표방하는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간주할 근거는 매우 약합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모두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도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인용을 했습니다만, 김교신 선생은 공산주의자 한림을 만난 후 ‘기독교를 믿는다 하여도 다수의 기독교도와는 도무지 언어와 사상이 상통할 수 없는데 반하여, 소위 반(反)종교인들과는 비록 근본적인 상위로 인하여 쌍방의 완전한 일치에 이를 수는 없다 할지라도 서로 일맥이 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입으로만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건전한 상식을 지닌 반(反)종교인이 예수와의 정신적 거리가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늬만 기독교인 사람보다는 한림 같은 공산주의자가 하나님에 더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의 허위의식
이제 김교신 선생과 한림의 우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시사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기’가 일종의 율법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율법의 실천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자신과 같은 율법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배척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태도가 타당한 것일까요?
예수께서는 사람을 미워하면 살인한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심의율(心意律)이라고 합니다. 육체를 움직여 상대를 공격하지 않았다 뿐이지 마음으로는 이미 상대를 살해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남들이 자신과 같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기’라는 율법을 실천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고 심판하려는 태도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경우 어떤 모습이 되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중세 카톨릭 종교재판관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종교적 입장이 다른 사람을 공권력과 물리력으로 잡아들여 마녀로 선고하고, 영혼을 정화한다는 미명 아래 화형에 처했던 저 악랄한 중세 종교재판관의 모습입니다. 이교도에게서 성지를 탈환한다는 미명 아래 일곱 차례나 원정길에 올랐던 십자군도 종교재판관의 모습과 오십보백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십자군이란 용어 자체가 제정신 가진 기독교인이라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세사에 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십자군은 사실 종교를 빙자한 조직적인 살인, 약탈, 방화 집단이었습니다. 예수의 정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행동입니다. 기독교를 빙자한 조직폭력 집단이었습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기독교를 들먹이는 미국의 근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마음마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남의 마음, 그것도 마음의 중심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겉보기에 공산주의자이지만 실은 무늬만 기독교인인 사람보다 하나님에게 더 가까운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무신론자라고 공공연히 자처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더욱 기뻐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판단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제 속도 모르는 인간인 주제에 하나님을 참칭하는 오만과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때 ‘지식인의 허위의식’이란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멋대로 남의 신앙을 판단하는 사람은 ‘신앙인의 허위의식’에 빠져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재(才), 학(學), 식(識)
앞에서 김교신과 윤치호에 대한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윤치호를 들먹거리는 이유는 그의 친일 행적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친일파 하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양심과 지조를 버리고 민족을 배신한 인물들이라고 매도하지만, 그와 같이 윤리적 관점에서만 평가하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악질적인 친일파가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양심을 버리고 의도적으로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은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윤치호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김교신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으로는 애국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주관적’으로는 애국자였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나라를 저버리고 민족을 배신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는 자발적인 친일을 하긴 했지만 스스로는 그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신은 일평생 옳은 길을 걷는다고 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그릇된 인생으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적어도 공적으로는 잘못된 생애였습니다. 그것이 역사의 평가, 역사의 심판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 옆에서 역사를 기록하던 사관(史官)이 있었습니다. 사관에게는 세 가지 자질이 요구되었다고 합니다. 재(才), 학(學), 식(識)이 그것입니다. ‘재’란 재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학’이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자질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친 것은 ‘식’이었다고 합니다. ‘식’이란 분별력, 판단력을 의미합니다. 방향감각, 역사의식을 말합니다.
‘식’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역사적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215년에 공포된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즉 대헌장입니다. 마그나 카르타는 권리청원, 권리장전과 더불어 영국 헌정사의 3대 문서로 꼽힐 정도로 중요한 문서입니다. 당시 국왕이었던 존의 폭정에 맞서 귀족들이 항의한 결과 얻어낸 성과물입니다. 그런데 이 문서를 보면 당시 참여한 귀족들 대부분이 자기 이름 옆에 도장을 찍고 있습니다. 귀족들이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몰랐기 때문에 도장으로 대신한 것입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글도 읽고 쓸 줄 몰랐던 문맹자들이 영국 정치사 발전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무식하긴 했지만 분별력과 판단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방향감각과 역사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예언자 아모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재와 학의 필요성을 부정하자는 게 결코 아닙니다. ‘식’이 없는 ‘재’와 ‘학’이 사상누각이란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재’와 ‘학’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윤치호와 김교신을 견주어 봅니다. 물론 김교신도 일본의 도쿄 고등사범학교를 나온 수재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윤치호가 ‘재’와 ‘학’의 면에서는 한 수 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어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생애의 열매를 두고 좀더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윤치호는 ‘재’와 ‘학’에서는 우수했을지 모르나, 김교신의 ‘식’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결국 김교신이 옳았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윤치호는 당대에 뛰어난 지식과 재능, 지위와 명성을 누리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결국 ‘기능적 지식인’에 머물렀습니다. 수단으로서의 지식은 풍부했지만 방향 설정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해방 후 식자들이 널리 개탄했던 일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원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정계, 재계, 학계에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 드물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공부도 많이 하고 지식도 많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역사의식은 없습니다. ‘재’와 ‘학’은 있으되, ‘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 3월 9일에 있었던 대통령과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국민들이 다 알고 느끼는 문제를 그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만할 정도로 엘리트임을 자부하던 그 집단이 자신들의 한계를 온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적으로 일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실제로 그 자리에서 그런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윤치호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분별력, 판단력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위기는 축복
정신과 전문의 중에 정혜신이란 분이 있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입니다. 제가 읽어보니 글 솜씨도 수준급입니다. 그분이 쓴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 40대를 거치면서 신체적, 사회적 한계를 느끼면서 자신에게 절망을 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몸은 늙어가고, 직장인들의 경우는 해직 등의 위기를 겪으면서 초라해지는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혜신 의사는 이런 중년의 위기가 오히려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겸손해 지면서 인간적으로, 내면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경험을 통해 오히려 높여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8복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방금 중년의 위기가 축복이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정혜신 의사는 여기에 예외가 되는 집단이 있는데, 그 집단이 바로 정치인들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언제나 따뜻한 양지를 찾아다니는 해바라기 정치인들은 결코 위기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기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내면적으로 성숙해지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몇몇 정치인들을 볼 때, 얼굴이 마치 ‘마귀’처럼 생겼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링컨은 사람이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얼굴이 그들의 천박한 내면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합니다.
구약의 예언자 스바냐는 이들을 ‘찌끼 위에 가라앉은 자들’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포도주를 만들 때, 일단 술이 다 익으면 포도 찌꺼기를 걸러내고 맑은 술은 따로 보관해야 합니다. 그래야 술맛이 오래 유지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귀찮다고 찌끼를 걷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면 통 안에 담아둔 술 전체가 탁해져서 못쓰게 된다고 합니다.
‘찌끼 위에 가라앉은 자들’은 위기를 겪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현실에 안주한 채 시간을 영원인 양 생각합니다. 닫힌 시각 속에서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자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자신을 객관화 하여 볼 줄 모릅니다. 그 우물은 지위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 우물은 돈일 수도 기득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우물은 교회일 수도 있고 교리일 수도 있습니다. 우물 바닥에 앉아 거기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정도는 다르지만 현실, 지위, 감투, 권력, 돈에 안주하려는 속성은 있습니다. 이런 속성은 모든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윤치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잘해봐야 백년도 못되는 짧은 인생을 마치 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속성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위와 권력의 확대재생산에만 골몰하는 모습입니다.
영원의 역사의식
앞서 노평구 선생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싶습니다. 우물 밖의 넓은 하늘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시간 차원의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한정된 인생을 전부로 알고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사회적 차원의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자신의 직업과 지위와 금력에 안주하여 광대무변한 하나님의 우주를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김교신은 이런 의미에서 실로 우물을 벗어나 하나님의 무한하심 앞에서 살다 간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김교신은 ‘전체’를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을 잃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영원의 역사의식’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김교신의 일기를 보면 우주의 무한대성과 시간의 영원성에 대한 경탄을 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김교신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날짜로 계산하곤 했는데, 이것도 같은 문맥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교신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미약함을 통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그 미약함을 들어 김교신으로 하여금 전 시간과 전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의식을 갖게 하셨습니다. 낮아짐으로써 더욱 멀리, 더욱 높이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결국 김교신은 두 가지 면에서 다 옳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도 옳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역사 앞에서도 옳았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두가 그 일에 대한 증인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 자체가 김교신의 길이 옳았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003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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