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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 서평

32.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의 몰락>

by 안티고네 2019. 8. 29.

대학이란 무엇인가

 

서보명 지음, <대학의 몰락>(동연, 2011)

 

미국 시카고 신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하는 서보명 교수가 한국 대학에 방문교수로 와있으면서 책을 펴냈다. 대학의 본질과 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고발한 그의 대학론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살펴본다.

 

1. 한국 대학의 입학사정관제는 2007학년도 입시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기존의 정량적 평가 방식에서 정성적 평가 방식으로의 변화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미 100년 전에 처음 시작된 이 제도의 배경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초반 유대인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만으로 미국 대학에 대거 입학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유대인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대학의 전통적 색채가 깨진다는 졸업생과 학부모들의 반대가 극심해졌다. 그러자 성적이 월등히 좋은 유대인 학생들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 은밀히 강구되었다. 학생들의 품성이나 됨됨이를 보는 입학정책을 고안한 것이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받지 않겠다는 말은 공개적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학을 지원한 학생이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 학생의 양쪽 집안에서 썼던 이름을 밝히도록 했고, 일률적으로 추천서를 제출하게 했다. 유대인 학생들은 주로 공부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과외 활동이나 봉사 활동 또는 스포츠에서는 약했다. 따라서 품성과 리더십을 본다는 이유로 그런 활동을 한 학생들을 우대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다. 졸업생의 자녀들을 우대하는 제도 역시도 적극적으로 운용되어 대학에서 유대인 학생들의 비율을 줄이는데 쓰였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업성적이 우수한 유대인을 차별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였다.

 

이 역사와 관련해 흥미 있는 사실이 있다. 뉴욕 시립대학은 학문적 전통이나 명성은 없었으나, 여러 이유로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지 못한 유대인 학생들의 대안이었다. 그런데 뉴욕 시립대학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12명이나 된다. 거의 모두가 유대인이고, 모두 1930년대에서 50년대 초반 사이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다. 뉴욕 시립대학은 입학사정관제로 인해 뜻밖의 수혜자가 된 것이다.

 

2. 대학은 전적으로 중세 유럽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파리대학은 1200년경 신학, 법학, 의학 등의 학과를 개설하여 교수진을 구성하고, 학사-석사-박사 등의 학위를 수여했다. 개설된 전공 학과가 많지 않다는 점만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대학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 산재한 수많은 대학들의 기원을 소급해 올라가면 종국에는 파리대학에 이르게 된다. 파리대학 교수 중 일부가 잉글랜드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을 열었고, 옥스퍼드에 불만을 품은 일부 교수가 뛰쳐나가 만든 것이 케임브리지대학이다.

 

유럽에서 발생한 대학 제도는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미국에서 하버드대학 등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19세기 일본은 서양의 대학 제도를 본받아 동경제국대학 등을 설립했다.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대학은 1924년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이다. 우리가 독자적인 대학 제도를 발달시킨 것은 광복 이후의 일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대학은 분명 고등교육기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고등교육기관이 다 대학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의 성균관은 고등교육기관이긴 하지만 대학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태학, 고려 시대의 국자감도 대학이 아니다. 대학의 세 가지 주요 구성 요소인 교과 과정(curriculum), 교수진(faculty), 학위제도(degree)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중세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중세 이전의 서양세계에 고등교육기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에도 플라톤의 아카데미(Academy), 에피쿠로스의 가든(Garden), 제논의 스토아(Stoa) 등이 있었다. 이들은 철학자들이 학생들을 모아 고고한 철학을 가르친 학교가 아니었다. 철학이 모든 학문을 포괄하던 시기에,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삶의 현실을 떠나 여가를 즐기는 행위는 아니었다. 당시의 철학은 학문적 담론이 아니라 삶을 선택하는 행위였다. 철학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논문으로 표현되는 교실의 학문이 아니라, 그 학파의 독특한 삶을 선택해 실천하는 것이었다.

 

어떤 철학에 입문한다는 것은 곧 그 삶의 공동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나 제논의 스토아에 입학한다는 것은, 그 학파의 세계관, 우주관, 신관, 인간관을 따르고, 그 철학을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영적 수련의 길로 들어가는 헌신적이고 실존적인 결단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것은 철학적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현대적 표현을 빌리면 종교적 수행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 결단은 언제나 공동체로의 입문이었다. 고대에는 공부가 마음과 몸을 닦는 수양의 과정이었고, 이 공부는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믿음과 믿음의 공동체가 학문적 공부에 우선하고, 공부는 공동체의 이상을 체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대의 학문적 전통은 중세 대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해체되었다. 스콜라철학이 대학 학문의 중심이 되면서 독특한 삶을 향한 수양과 실천으로서의 철학은 사라지고, 논쟁과 논증이 철학과 신학의 방법이자 내용이 되었다. 대학이란 제도는 몸과 마음의 수양을 통해 이상을 구현한다는 학문의 의미에서 멀어진 것이다. 고대 서양의 고등교육기관은 영적 수련과 헌신적인 삶을 위한 실존적 결단의 장이었지만, 중세 대학은 여기에서 멀어져 논쟁과 논증을 학문의 방법으로 삼았다. ‘공부만잘하는 영리한 인간이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말한다.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 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적 성취를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 학자들은 남의 눈을 의식한 학문을 한다는 뜻이다. 내적 수련과 자기완성을 위한 공부가 아닌,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 출세를 위한 공부에 매몰된 학자들에 대한 꾸짖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