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통적으로 왕이 최고 사제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원적 제정일치 사회라 할 수 있다.
중세 비잔티움 제국은
황제교황주의(caesaropapism)를 유지한 점에서 우리와 유사하다.
반면 중세 서유럽은 황제권과 교황권이 분리되어
교속 양권의 이원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 사건은
역사적 의미의 해석이 분분하지만,
정신적 권위인 교황이 정치적 권력인 황제를 무릎 꿇렸다는 상징적 의의가 매우 크다.
남재희 선생이 종종 하는 말이지만, 서양에는 "정치는 2류가 하는 것이다"라는 금언이 있다.
정신적 권위가 정치 권력을 굴복시킨 역사적 경험을 가진 사회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한국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경험이다.
게다가 유교는 존재론을 결한 정치 이데올로기다.
우리는 권력 서열로 계급놀이, 벼슬놀이 하는 것이 체화된 풍토 속에서 수천년 역사를 이어왔다.
정치지상주의가 지극히 자연스럽다.
작가 이병주가 말했다.
"돈이 발언하면 사람은 침묵한다."
조금 표현을 바꾸면,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가 발언하면
모든 비정치 분야(문화, 학문 등)가 권력 앞에 침묵한다.
해방 후 대학 총장들 중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은 분이 김준엽 총장 말고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한국 사회의 과도한 정치 쏠림과 정치지상주의를 경계한다.
한국 사회도 언젠가 "정치는 2류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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