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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선생

기승전교회

by 안티고네 2015. 7. 13.

김교신의 1933년 1월 일기. "가령 수십 년간 교역자 생활을 했다는 노(老)목사 한 분을 처음 만났다고 하자. “나 예수 믿습니다”라는 대답에 만족치 못하여 두 마디 만에 기필코 묻는 말은 “어느 교회에 다니십니까” 하고 심문이 시작된다. 이로부터 세례는? 성찬은? 하는 문답이 오고 갈수록 마치 여름 하늘 구름의 형태가 변화하듯이, 칠면조의 안색이 때에 따라 변하듯이 노 신도의 안면 근육이 동요한다. 나중에는 예수 믿는다는 말을 듣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실망과 증오가 폭발하여, 첫 만남이 영원한 이별로 귀결되고 만다. 오호, 독실한 믿음의 재앙이여! 껍데기를 개탄한다!"

김교신의 1934년 12월 일기. "오직 교파심에 굳어진 마음만이 진주를 보아도 돌덩이라고 멸시할 뿐이다. 사실 우리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여도 다수의 기독교도와는 도무지 언어와 사상이 상통할 수 없는데 반하여, 소위 반종교인(유물론자 또는 공산주의자)들과는, 비록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쌍방이 완전한 일치에 이를 수는 없다 할지라도, 서로 일맥이 상통하는 것을 느끼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무엇보다도 저희들은 물질에 얽매여서 주의(主義)를 선전하는 이들이 아닌 까닭에 무엇보다도 정직하다. 설혹 자기편에 불리한 결론에 이르는 경우 있더라도 옳은 것을 옳다고 발언할만한 자유가 있고 의기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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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교신이 교회 사람과 대화하면서 느낀 점. "기승전-교회" '기승전-교파" 하고 마는 그들에게 지적 정직성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보았다. 교회 비지니스에 불리하면 무조건 반대!

2. 김교신은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이 교회 사람들보다 오히려 지적으로 정직하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은 비지니스 차원에서 주의(主義)를 선전하진 않았다는 것.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줄 알았다.

3. 김교신은 교회에서 쓰는 '암호화된 언어'에 동의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기에도 '주일'이 아닌 '일(요일)'로 표기했다. 

4. 이 글은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