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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의 이중성

by 안티고네 2015. 6. 14.

 

 

횡단보도는 건널 수는 있지만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건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도로에 그어진 줄무늬는 통행의 가능성을 뜻하는 동시에 통행의 어려움을 뜻한다. 완전히 금지되지는 않지만 일정한 조건을 갖출 때에는 통과가 허락된다. 해로운 것은 막아내고 이로운 것은 통과시킨다. 이런 여과 기능은 줄무늬가 지닌 장점 중 하나다.

 

프랑스어에서 줄을 긋다배제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줄무늬 옷은 입은 사람은 사회에서 배척된 사람을 뜻했다. 그러나 이런 배제를 박탈이 아닌 보호라는 뜻으로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중세 사회가 미치광이에게 입혔던 줄무늬 옷은 물론 경멸과 배척의 뜻이 담긴 기호였다. 그러나 달리 보면 그것은 악령에게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창살, 장벽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방어수단 없이 허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미치광이는 악마의 희생양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처럼 옷의 줄무늬가 보호막 역할을 한다는 믿음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잠잘 때 입는 파자마가 줄무늬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잠이 드는 순간 무방비상태가 된다. 잠든 동안 악령과 악몽에서 우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줄무늬 파자마를 입는 것은 아닐까? 줄무늬 시트, 줄무늬 매트 역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창살이나 울타리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도로의 횡단보도에 그어진 줄무늬가 보호자 역할을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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