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고흐가 ‘소녀시대’를 만났다면 …
명화로 읽는 고전 100년 전 유럽 휩쓴 자포니즘 … 한류 K-Pop 파리공연 계기로 되짚어보니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목판화는 그 대담한 구도와 선과 색채 대비로 19세기 후반 유럽 화가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이것이 17~18세기 에도에 처음 퍼질 때는 일본인에게도 신선한 것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림 하면 오랜 수도 교토의 귀족이 즐기는 관념적인 전통 동양화였다. 반면 우키요에 목판화는 신도시 에도의 상공업자 계층을 위해 대량으로 찍어낸 파격적이고 세속적인 그림이었다. 이를테면 게이샤나 유녀(遊女)를 모델로 한 관능적인 미인도, 서양화의 영향을 받은 드라마틱한 원근법의 풍경화 같은 것들 말이다.
네덜란드 태생의 후기 인상파 거장 빈센트 반 고흐는 프랑스에 와서 자포니즘 열풍에 휩싸였고, 히로시게의 풍경 판화에 반한 나머지 유화로 모사(模寫)하기도 했다. 그 모사화(그림 ① - 2)를 보면 히로시게의 그림 비례를 똑같이 따랐고 캔버스 양쪽 남은 공간에 한자까지 정성껏 그려 (쓴 것이 아니라) 넣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지배하는 그 극도의 명쾌함을 보면 그들이 부럽더구나. (중략) 그들은 마치 조끼 단추 채우는 것만큼이나 수월하게 잘 고른 몇 개의 선만으로 형태를 그려내지.”
한편 파리 중심의 자포니즘을 영국에 앞장서 전파한 사람은 미국인으로서 유럽에서 주로 활동한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였다. 그는 막 자포니즘 열풍이 시작된 1860년대에 이미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일본식 실내에 서 있는 장면(그림 ③)을 그렸다. 이 그림의 제목은 독특하게도 ‘장미색과 은색’이라는 색채 이름으로 시작한다. 휘슬러는 자신의 그림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으려 하지 말고 마치 추상적인 음악의 화음과 리듬을 즐기듯이 색채와 형태의 조화를 보라고 주문했다. 그런 휘슬러에게 우키요에는 독특한 면 분할(서양 원근법을 따랐음에도 평면적으로 보이는)과 색채 대비, 그리고 일상의 섬세한 찰나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점에서 매혹적이었다.
휘슬러를 찬미하는 시를 쓰기도 한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1885~1972)는 휘슬러의 그림과 우키요에, 그리고 우키요에와 함께 전파된 일본의 시 하이쿠에서 영향을 받아 이미지즘(Imagism) 운동을 일으켰다. 이미지즘 시는 우키요에가 고흐의 말마따나 “잘 고른 몇 개의 선만으로 형태를 만드는” 것처럼, 간결한 일상어로 뚜렷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파운드는 1913년 이미지즘의 대표시 ‘지하철 역에서’를 발표했다.
지하철 역에서
‘IN A STATION OF THE METRO’
군중 속 환영 같은 이 얼굴들;
젖은, 검은 나뭇가지의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이처럼 우키요에로부터 시작된 자포니즘은 일본의 다른 미술과 문학, 전반적인 미학과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발전했다. 여기에서 주지할 점은 그 기폭제 우키요에가 앞서 말한 것처럼 전적으로 일본 전통적인 것이 아니며 또 세속적인 대중미술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예술가들은 우키요에가 신선하면서도 너무 낯설어 공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은 대중예술 K-Pop이 한류의 선봉에 서는 것은 일각의 우려와 달리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앞으로의 관건은 그것이 한순간의 소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인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에 영향 받은 문화가 탄생하게 하고 그것이 한국의 더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조이스·엘리엇 발굴하고 한시 번역했던 시인
에즈라 파운드
문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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