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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번역

박태원의『삼국지』를 다시 읽으며

by 안티고네 2011. 5. 31.

박태원의『삼국지』를 다시 읽으며
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박태원의 『삼국지』는 나의 독서 체험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향과도 같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공부를 팽개치고 밤을 새우며 읽던 이 책에 대한 향수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삼국지』에 빠져 성적이 크게 떨어지자 집안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던 나를 구해준 것은 나와 같이 『삼국지』에 빠져 있던 같은 반 친구였다. 그 녀석은 당돌하게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인데 이번 시험에 성적이 좀 떨어졌다고 뭘 그러세요”라고 조조의 말투를 흉내 내어 나를 변명해주었는데, 근엄하던 아버지도 그 말을 듣고는 “너 이 녀석 『삼국지』를 읽더니 말솜씨가 제법이구나”하고 빙긋 웃으셨다.

모더니스트들도 한문과 전통문화는 기본 교양

몇 년 전, 우연히 들른 경산의 헌책방에서 5권짜리 정음사판 『삼국지』를 구했다. 기분이 좋아 『삼국지』마니아인 옛날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찌나 흥분을 하는지, 이건 내가 가질 게 아니라 이 친구에게 줘야겠구나, 하고 다음날 택배로 부쳐주었다.

광대한 대륙을 무대로 수많은 영웅호걸과 인간 군상들이 엮어가는 파노라마는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제갈공명과 조조, 주유의 지략 대결, 조조의 백만 대군과 중과부적인 오촉연합군이 대결하는 적벽대전, 용장 관우의 장렬한 최후 등은 어린 소년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대하 역사 드라마였다.

정음사 판 『삼국지』는 사실 어려운 고사성어와 고문 투의 문체 때문에 초등학교 학생이 읽기에는 벅찬 것이었다. 그래도 여러 번 읽다보니 전후맥락으로 그 의미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고 중간 중간에 삽입된, 원문과 함께 실린 번역된 한시도 너무 멋져 보여 무턱대고 암송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당시 내가 읽은 정음사 판 『삼국지』는 나관중 작, 최영해 역으로 되어 있었다. 훨씬 뒤에야 나는 역자인 박태원이 월북 작가여서 그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출판사 사장인 최영해의 이름을 대신 내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천변 풍경』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쓴 작가가 고색창연한 고전적 품격을 가진 『삼국지』의 번역자라는 사실은 얼핏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해학적이고 냉소적인 세태묘사에 능숙한 모더니스트가 어떻게 장중하고 비장한 문체의 역사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최근에야 구보 박태원이 소싯적부터 숙부이자 한학자인 양의 박용남에게 한문을 배우고 그 후에는 당대의 중국문학 대가인 양백화 선생에게 사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1930년대의 모더니스트 문학동인 ‘9인회’ 회원이었던 시인 정지용이 한시의 대가였고, 소설가 이태준이 전문적인 안목을 가진 골동서화의 수집가이자 감식가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문과 전통문화에 대한 소양은 당대 모더니스트들의 기본 교양이었던 모양이다.

영어는 친숙하고 한자는 낯설기만 한 요즘 독자들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동양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한자 표현과 고문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글전용이나 영어몰입교육과는 관계없이, 기본적인 한자교육은 필수적이다. 유럽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라틴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추억의 정음사 판, 최근 나온 깊은샘 판        

근자에 중국에서 제작한 삼국지 영화들(「적벽대전」1편과 2편, 「용의 부활」, 「명장 관우」)이 잇달아 상영되면서 국내의 출판시장에서도『삼국지』열기가 대단하다. 독자층도 다양하고 주변에선 심심치 않게 마니아급 열성 독자나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삼국지』의 유적지를 따라 중국 현지를 탐방하는 동호인들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에 나온 깊은샘 판 『삼국지』는 박태원이 북한에서 남로당계로 몰려 숙청되었다가 복권된 후에 완역한 판본인데, 북한에서도 절판된 것을 일본과 중국 등지를 뒤져 힘들게 복간한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정음사판보다는 한글로 쉽게 풀어쓰고 역주를 붙여 읽기 쉽다.

박태원의 장남인 박일영 씨가 쓴 ‘나의 아버지 박태원과 삼국지’라는 머리글도 읽을 만하다. 혜화동 최현배 선생(정음사 최영해 사장의 아버님인 한글학자) 댁으로『삼국지』원고를 나르던 일이라든가, 미국이민 후에, 병으로 쓰러진 북한의 아버지를 방문하거나 연락을 할 기회가 있었으나 철저한 반공교육 탓으로 포기한 얘기는 가슴이 찡하다. 박태원의 외손자인 봉준호 감독이 언젠가 이런 얘기들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영상화할 때는 박태원 마니아인 건축가 조이담의『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가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세로닫이로 되어 있는 10권짜리 정음사판 『삼국지』가 단연 최고의 결정판으로 남아 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도 번듯한 10권짜리 가로쓰기판형보다는 신문 연재소설을 스크랩하여 복사한 흐릿한 판본이 왠지 정전처럼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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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