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연히 들른 경산의 헌책방에서 5권짜리 정음사판 『삼국지』를 구했다. 기분이 좋아 『삼국지』마니아인 옛날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찌나 흥분을 하는지, 이건 내가 가질 게 아니라 이 친구에게 줘야겠구나, 하고 다음날 택배로 부쳐주었다.
광대한 대륙을 무대로 수많은 영웅호걸과 인간 군상들이 엮어가는 파노라마는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제갈공명과 조조, 주유의 지략 대결, 조조의 백만 대군과 중과부적인 오촉연합군이 대결하는 적벽대전, 용장 관우의 장렬한 최후 등은 어린 소년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대하 역사 드라마였다.
정음사 판 『삼국지』는 사실 어려운 고사성어와 고문 투의 문체 때문에 초등학교 학생이 읽기에는 벅찬 것이었다. 그래도 여러 번 읽다보니 전후맥락으로 그 의미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고 중간 중간에 삽입된, 원문과 함께 실린 번역된 한시도 너무 멋져 보여 무턱대고 암송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당시 내가 읽은 정음사 판 『삼국지』는 나관중 작, 최영해 역으로 되어 있었다. 훨씬 뒤에야 나는 역자인 박태원이 월북 작가여서 그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출판사 사장인 최영해의 이름을 대신 내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천변 풍경』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쓴 작가가 고색창연한 고전적 품격을 가진 『삼국지』의 번역자라는 사실은 얼핏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해학적이고 냉소적인 세태묘사에 능숙한 모더니스트가 어떻게 장중하고 비장한 문체의 역사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최근에야 구보 박태원이 소싯적부터 숙부이자 한학자인 양의 박용남에게 한문을 배우고 그 후에는 당대의 중국문학 대가인 양백화 선생에게 사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1930년대의 모더니스트 문학동인 ‘9인회’ 회원이었던 시인 정지용이 한시의 대가였고, 소설가 이태준이 전문적인 안목을 가진 골동서화의 수집가이자 감식가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문과 전통문화에 대한 소양은 당대 모더니스트들의 기본 교양이었던 모양이다.
영어는 친숙하고 한자는 낯설기만 한 요즘 독자들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동양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한자 표현과 고문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글전용이나 영어몰입교육과는 관계없이, 기본적인 한자교육은 필수적이다. 유럽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라틴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