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오늘] 학문으로 신념 표출한 막스 베버, 우리 대학가 ‘폴리페서’에 경종
베버는 비스마르크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물론 독일 통일의 업적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서유럽 다른 나라들과 달리 독일에서는 시민계층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족세력이 통일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베버는 인정했다. 국가의 통일은 아버지의 업적이므로 아들은 이를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의미는 거기까지였다. 아버지는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만약 무대에 계속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지금까지의 공로도 퇴색하고 말 것이었다. 이제 아들이 역사의 무대에 설 차례였고, 그 아들은 다름 아닌 시민계층이었다. 1970년대 개발논리가 여전히 ‘아버지’로 군림하고 있는 우리에게 베버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베버는 독일 역사가 종말을 고하지 않으려면 미숙한 시민계층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키는 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봤다. 눈여겨볼 것은, 베버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정치 참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학문적 작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대표 저서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근대 시민계층의 직업윤리’를 문화사적으로 추적한 배경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대가 ‘폴리페서’들을 규제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오히려 양성화하는 내부 규정을 마련했다가 반대 여론에 밀려 보류했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으로 ‘권력’을 택하건, ‘학문’을 택하건 각자의 자유다. 하지만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학생 수업권과 대학 운영에 지장을 주는 인사들이 과연 개인적 영달을 넘어서서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할 수 있을까.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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