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오늘] 오바마 부친과 화해한 미 백인…동족끼리도 ‘소통’ 안 되는 한국
갑자기 술집이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오바마 시니어를 바라봤다. 한판 싸움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백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짓고는 편견의 어리석음과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인간이 가진 보편적 권리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백인은 미안했던지 주머니에서 돈을 100달러나 꺼내 오바마 시니어에게 줬다. 그 돈으로 그날 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공짜로 술을 먹었고, 남은 돈으로 오바마 시니어는 그달치 집세를 냈다. 10대 때 할아버지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은 오바마는 과연 사실일까 하고 의심했다. 그런데 여러 해 지난 뒤 오바마의 신문 인터뷰 기사를 읽은 한 일본계 미국인이 전화를 걸었다. 60년대에 하와이대를 다녔던 그는 신문을 읽다가 이름이 겹치는 오바마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생각났다고 했다. 전화 도중 그는 백인 남자가 오바마 시니어에게 잘못을 사과하며 돈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똑같이 되풀이했다.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와이대 졸업 후 장학생으로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신생 독립국 케냐에서 촉망 받는 수재였다. 웅변가였던 그는 자석과도 같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니 자신을 경멸한 백인을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능력만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아무리 옳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하면 용납하지 않으려는 감정과잉 사회, 합리적 설명을 들어도 ‘패거리의 이익’에 어긋나면 한사코 귀를 틀어막는 소통불능의 우리 풍토에서는, 오히려 ‘흑인이 하는 옳은 말’을 듣고 즉석에서 잘못을 사과한 ‘그른 말을 한 백인’이야말로 오바마 시니어 못지않게 대단한 인물로 보인다. 합리성·도덕성을 내면화한 ‘근대적 개인’은 우리에겐 아직 요원한가.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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