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밀턴, 한국 지식인에게 ‘영혼’을 묻는다
박상익 교수 우석대·서양사 | 제90호 | 200811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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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사회는 시종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륀지 정부’가 탄생할 정도로 ‘영어 사랑’이 지극한 나라, 영어 발음을 위해 혀 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 ‘영어몰입국가’의 반응치곤 매우 기이하다. 우리에게 영어란 오로지 먹고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시대의 ‘천격(賤格)’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밀턴은 시인이기에 앞서 당대 일급의 논객이자 석학이었다. 어학에도 조예가 깊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수많은 고전어는 물론이고 유럽 각국의 현대어에도 두루 능통했다. 특히 당시 국제어인 라틴어 문장력은 프랑스·이탈리아 등 대륙의 지식인들도 극찬할 정도였다. 밀턴이 크롬웰 정부에서 외교부장관직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얼른 납득하기 힘들지만 17~18세기 영국은 유럽에서 열등감에 시달리던 변두리 국가였다. 영국인은 특히 이탈리아에 심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문명의 발상지였을뿐더러 15세기에 화려한 르네상스 문화를 피워 낸 ‘선진국’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영국은 유럽의 서북쪽 끝에 붙어 있는 낙후한 변두리 국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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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유학’에서 돌아온 밀턴은 이렇게 다짐했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 후세를 위해 글로 쓰게 된다면 내 조국을 명예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라틴어로 글을 쓰면 해외에서 더 큰 명예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나는 모든 근면과 기예를 다 발휘하여 나의 모국어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 사용하겠다.” 마지막 문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밀턴은 국제적 명성을 얻기 위해 영어보다 라틴어로 저술하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변방 언어인 영어로 작품을 쓰면 읽을 사람이 몇 안 되지만 라틴어로 쓰면 전 유럽의 지식인을 독자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턴은 이 모든 가능성을 접고 모국어로 작품을 쓰겠노라 결심했고, 그의 야심은 훗날 『실락원』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영어가 세계어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는 이 같은 수많은 숨은 노력이 있었다.
작금의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현실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를 국내 대학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연구 업적 평가의 기준이 미국의 저명 학술지에 실린 논문 횟수이기 때문이다. 국내 학술지보다 미국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3~5배 높은 점수를 받는데, 미국 경제학회지에 논문이 실리려면 미국 경제학계의 이슈를 따라가야 한다. 굳이 한국 현실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 영혼은 미국 하늘을 떠돌면서 육신의 빈 껍데기만 이 땅에 머물고 있는 황폐한 풍경이다. 이런 현상이 경제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근대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정체성’은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조국은 육신의 영달만을 취하다가 미련 없이 떠나도 좋은 곳이 아니다. 밀턴 탄생 400주년을 맞이하여 이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의 꽃’을 활짝 피워 낼 젊은 세대가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9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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