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본지(<진리와 독립>) 창간을 두고 독자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솔직한
소감을 받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대체로 본지와 더불어 꾸준히 공부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이 많았다. 이것은 편집 방침과 독자의 입장이 호흡이 일치된
것으로 알고 기쁜 마음이었다.
소극적이라고 할 분이 있을지 몰라도, 본지의 창간 의도는 우선 필자 자신들의 연구와 공부에 기여하려는 것이었다. 본지 독자들의 공부는 그 다음 문제였다. 권두문에서도 지적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신 연령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결과는 백 년 후를 기약하기로 한다.
나는 우리의 이 현실로써는 우리가 이상으로 추구하는 것의 최저치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결국 각 방면의 정신적인 문제라고 보는데, 비근한 예로 일제 시대를 돌이켜보면 대체로 독립 없이는 공부고 뭐고 필요 없다는 식의 자포자기 내지는 정신적 비굴에 떨어져, 내외로 참 실력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었다. 민족의 정신적, 도덕적 반성과 자각에 전력했어야 할 기독교까지 한낱 정치 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기대했던 민족의 영광스러운 독립을 맞이한 우리의 이 더럽고 비참한 현실을 보라. 나는 무엇보다도 전날의 비자각적이고 근시안적인 우리의 태도에 그 책임을 돌리고 싶다. 우리가 이 현실에서 아직도 무엇인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겨울나무에서 과일을 구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고 또 한번 자포자기와 비굴에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칼 힐티는 “사람은 내세에 가서도 할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 “할 일”을 지금 시작하려 하는 것이다. 먼저 성경에서 출발하여, 전체 기독교 문명, 그 중에서도 각 방면의 제1급의 고전과 인물, 역사 등을 꾸준히 공부하도록 하겠다.
먼저 성경에서는 신앙과 인생과 우주의 본질을, 그리고 고전과 역사를 통해서는 이 위대한 신앙이 고전 사상가들의 인격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소화되고 발현되었는가를 보고자 한다. 아니, 고전에서 깊이 인생을 깨우치고 올라가 신앙에 접선되고, 다시 내려와 도덕적인 자각을 통해 독립된 인격으로서 이 현실에 굳게 서려는 바이다. 민족 전체와 더불어 백 년 후를 기하며…….
이런 의미에서 본지를 손에 드는 분들은 가급적 전체를 빠뜨리지 말고 통독해주시기 바란다. 성경, 고전 등을 몇 쪽 분량으로 소개할 때 물론 단번에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필자와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 기어이 얻는 바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사실 쉬운 것을 읽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독서가 아니다. 독일의 한 철학자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일생 수십 번 읽었으나 매번 새롭게 읽었다고 한다. 고전이란 실로 이렇게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무한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특히 고전 중의 고전인 성경이 현세와 내세를 관통해 인생을 입체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소극적이라고 할 분이 있을지 몰라도, 본지의 창간 의도는 우선 필자 자신들의 연구와 공부에 기여하려는 것이었다. 본지 독자들의 공부는 그 다음 문제였다. 권두문에서도 지적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신 연령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결과는 백 년 후를 기약하기로 한다.
나는 우리의 이 현실로써는 우리가 이상으로 추구하는 것의 최저치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결국 각 방면의 정신적인 문제라고 보는데, 비근한 예로 일제 시대를 돌이켜보면 대체로 독립 없이는 공부고 뭐고 필요 없다는 식의 자포자기 내지는 정신적 비굴에 떨어져, 내외로 참 실력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었다. 민족의 정신적, 도덕적 반성과 자각에 전력했어야 할 기독교까지 한낱 정치 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기대했던 민족의 영광스러운 독립을 맞이한 우리의 이 더럽고 비참한 현실을 보라. 나는 무엇보다도 전날의 비자각적이고 근시안적인 우리의 태도에 그 책임을 돌리고 싶다. 우리가 이 현실에서 아직도 무엇인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겨울나무에서 과일을 구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고 또 한번 자포자기와 비굴에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칼 힐티는 “사람은 내세에 가서도 할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 “할 일”을 지금 시작하려 하는 것이다. 먼저 성경에서 출발하여, 전체 기독교 문명, 그 중에서도 각 방면의 제1급의 고전과 인물, 역사 등을 꾸준히 공부하도록 하겠다.
먼저 성경에서는 신앙과 인생과 우주의 본질을, 그리고 고전과 역사를 통해서는 이 위대한 신앙이 고전 사상가들의 인격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소화되고 발현되었는가를 보고자 한다. 아니, 고전에서 깊이 인생을 깨우치고 올라가 신앙에 접선되고, 다시 내려와 도덕적인 자각을 통해 독립된 인격으로서 이 현실에 굳게 서려는 바이다. 민족 전체와 더불어 백 년 후를 기하며…….
이런 의미에서 본지를 손에 드는 분들은 가급적 전체를 빠뜨리지 말고 통독해주시기 바란다. 성경, 고전 등을 몇 쪽 분량으로 소개할 때 물론 단번에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필자와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 기어이 얻는 바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사실 쉬운 것을 읽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독서가 아니다. 독일의 한 철학자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일생 수십 번 읽었으나 매번 새롭게 읽었다고 한다. 고전이란 실로 이렇게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무한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특히 고전 중의 고전인 성경이 현세와 내세를 관통해 인생을 입체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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