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칼럼]계급배반과 촛불 사이
한나라당이 4월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에 복귀한 지는 이제 2개월여다.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대선과 총선 결과들을 두고 ‘계급배반 투표’라고 불렀다. 노동자·농민·서민층이 도리어 자신의 사회 경제적 이해와 일치하지 않는 투표를 한 것이다. 그 심리는 쉽게 말해 “그래도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서울 강남지역은 계급에 충성스러운 투표를 했다.
그러나 당선 후 70~80%를 오르내리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몇달 만에 한자릿수로 수직 추락했다. 청와대 수석들은 전원 사표를 냈다. 내각도 상당한 물갈이가 예고됐다. 상황을 바꾼 기폭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였다. 정부는 어처구니 없게 광우병 쇠고기 관련 검역주권을 포기했다. 이것이 촉발한 국민적 분노가 촛불집회로 이어져 달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떠나 보더라도 계급배반 투표로부터 촛불집회로 옮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너무 짧아 어리둥절할 정도다.
- ‘잘못한 투표’ 일깨워준 이명박 -
그래서 묻게 된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닥친 이 변화, 반전(反轉)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난 대선·총선에서 계급배반 투표를 거부하지 못했던 시민들이 어느날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까지는 어떤 집단적 심리기제가 작동한 것일까. 시민들의 정치의식, ‘민도(民度)’가 그 사이 갑자기 높아진 것인가. 또 현재의 촛불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것인가.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촛불집회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상을 표징하는 대표적 사건”이라며 제도권 정당의 무력성을 지적했다. 이에 동의할 때 그토록 단시간에 계급배반 투표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 공로는 온전히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려야 한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그는 다른 분야에서도 국민들을 미망에서 깨어나게 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실체를 낱낱이 깨닫게 했으며 이른바 ‘1+5 의제(광우병+의료보험·공기업 민영화, 물 사유화, 교육자율화, 대운하,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시민의 인식과 경계를 강화시켰다.
촛불집회의 장래에 대한 입장은 아직 촛불을 꺼서는 안된다는 것과 이 단계에서 제도정치권에 맡기고 지켜보자는 것으로 대별된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촛불 민주주의’ 실험의 진로에 대해서는 참여 주체들 사이에 치열한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중요한 것은 촛불집회의 정신과 동력을 잃지 않는 일이다. 촛불의 진로에는 안팎의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촛불집회는 중심의 부재로 인한 자발성의 딜레마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단 몇 달 만에 부인해야 하는 자기부정의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딜레마에 노출된 대중들에게서 과거의 계급배반 투표 행태가 재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이미 집권세력은 촛불에 대해 대대적인 반격과 역공에 나섰다. 이는 전방위적으로 펼쳐질 조짐이다. 족벌신문들과 경제단체들, 검찰은 색깔론, 배후설 등을 동원하며 네티즌들의 광고주 압박운동을 불법으로 옭아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이 정권은 쇠고기 파문 확산과 지지율 하락이 KBS와 MBC 등 공영방송 때문이란 생각을 버리지 않고 방송장악 기도를 더욱 노골화할 것이다. 이 반격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촛불 이전과 이후 우리 사회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될 것(하승창 시민연대 위원장)”이란 관측도 있지만 지나친 낙관은 삼가야 한다.
- ‘촛불 정신’ 잃으면 반복 될수도 -
서울대 조국 교수는 “촛불시위는 진보정치세력 전체의 지도력 부재가 다 드러난 사건이다. 촛불 대중에 대한 찬양으로만 흐르면 자신이 왜 무능했는지 답이 안 나온다. 그렇게 되면 대중은 다시 보수로 회귀한다”고 경고했다. 집권 초기부터 한계와 무능을 드러내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조교수가 경고한 대로 촛불정국은 진보세력·정당에 대중적 열기를 지도할 리더십과 능력이 있는지 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철웅 논설위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241812245&code=99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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