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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읽기

[펌]이명박은 나폴레옹 3세

by 안티고네 2007. 12. 20.

이명박은 나폴레옹 3세  (umberto/독자)
  
  어차피 다들 선거 결과는 예상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BBK 동영상' 때문에 이명박의 지지율은 좀 깍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이 나왔더군요. 아니 그나마 정동영이 3위를 면하고 2위까지 치고 올라간 것도 그 덕을 봐서인가요?
  
  이명박이 어떤 인물인지는 사람들이 확실히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안 세력의 부재와 노무현에 대한 광범위한 적대감, 무슨 짓을 해서든 돈만 벌면 된다는 천민 자본주의가 결합된 결과이겠지요.
  
  기분이 착잡하긴 합니다만, 실망은 금물 입니다. 프랑스 정치사에서 비슷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시민혁명 이후 혁명-과격화-반동-다시 혁명의 경로를 밟아가며 민주 정치를 발전시켰습니다.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를 몰아낸 프랑스인은 부르주아와 좌파들이 타협을 해서 '시민왕' 루이 필립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루이 필립은 평소 자유주의적 견해를 갖고 있었고 당연히 개혁적 인물로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루이 필립은 그 기대를 배반했고 대체로 보수적 틀에 안주하고 말았습니다. 루이 필립의 치세동안 프랑스는 급격한 산업화를 거쳤고 초기에 그를 지지했던 노동자의 생활은 급격히 악화되어 갔지요. 어떤 면에서 루이 필립은 지금의 노무현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루이 필립의 대안으로 프랑스 국민이 선택한 인물이 나폴레옹의 조카 '나폴레옹 3세' 입니다. 혁명에 대한 냉소가 '나폴레옹 향수'를 불러왔고 그 결과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이죠.
  
  나폴레옹 3세의 치세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다들 세계사 시간에 배우셨을 듯합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 향수에 기댄 박정희를 흉내내는 어느 당선자의 결과도 아마 비관적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혁명-반동-혁명의 복잡한 정치사를 겪었던 프랑스는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꾸준히 정치가 발전했습니다. 막연한 영웅에 대한 기대나 '묻지마 지지'는 꼭 한국에만 국한된 사건은 아니지요. 아마 다시 5년이 지나면 한국의 유권자들도 많이 배우고 많이 노련해져 있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명박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불러올 문제를 5년 동안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입니다. 사실 자유주의 우파든, 좌파든 괜찮은 대안 세력만 있었다면 '거짓말쟁이' 후보가 당선되는 일은 상당히 힘들었을 겁니다. 짧게는 다음 총선까지 길게는 5년 동안 대안 세력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의 문제겠지요.
  
  그리고 그 대안의 문제는 단순히 어떤 정책을 반대할지 안할지의 문제나 어떤 법을 통과 시킬지 말지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지 광범위한 논쟁과 토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말 미국식으로 갈 것인지, 서유럽이나 북유럽 식으로 갈 것인지, 그것이 가능한지 여부까지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지난 1990년대나 2000년대의 상당기간 동안 자유주의 우파나 좌파는 제대로 된 논쟁이나 고민이 없었다고 봅니다. 자유주의 우파는 대충 과거의 고성장을 유지하면서 기존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면 모든 일이 다 풀릴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좌파는 동구권이 무너진 이후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대안이 없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겠지요. 일반 유권자도 어떻게 자신들의 의견을 정당과 정치가에게 관철시킬 것인지의 문제도 고민해 봐야 할 듯 싶습니다. 열린우리당이나 개혁당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그렇다 해도 탄탄한 당원 조직을 자랑했던 민주노동당까지 민심에서 고립된 것은 심각한 문제 입니다. 일반 유권자 혹은 평당원의 논의와 당 조직 상층부의 괴리가 크다는 것인데,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제대로 된 정당 정치가 이뤄지고 '개혁 세력'의 재생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는 지지자를 배신하는 정당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219213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