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2006년 6월호 이 달의 책 후보(3권)
《죽음, 또 하나의 세계》 최준식 지음|동아시아|320쪽|값 15,000원
시인 롱펠로(Longfellow)는 ‘인생 찬가’에서 “삶은 현실이다!”(Life is real!)라고 읊었다. 그러나 죽음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 구절을 “죽음은 현실이다!”(Death is real!)라고 바꿔도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린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엄존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이런 태도는 대단히 불합리한 것이다.
최근 30여 년 동안 서양 학계에서는 죽음학, 특히 죽음 뒤의 세계를 다녀왔다고 알려진 근사체험자들에 관한 연구가 꾸준히 축적되어 왔다. 이 책은 그 동안 축적된 연구 결과를 종합, 정리하고자 한 국내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근사체험자들이 체험을 겪고 난 후 ‘사랑’과 ‘배움’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현존하는 위대한 고등종교 창시자들의 가르침을 압축, 요약해주는 말이지만, 정작 우리 주변의 기성 종교들은 교리와 형식주의에 치우쳐 이 본질적 가르침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제도권 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동시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지나치게 현세중심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 꼭 알아야할 내용이기도 하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백낙청 지음 | 창비 | 288쪽 | 값 15,000원
박정희 시대 새마을 운동의 구호는 “잘 살아보세”였다. 백낙청은 새마을운동의 철학을 ‘걸인의 철학(the philosophy of a beggar)’이라고 비판한다(272쪽). 기본적인 의식주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걸인의 철학에 물든 사람이 거기서 탈피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말도 덧붙인다. 걸인의 철학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아보세”로 진화할 뿐, ‘잘사는 것’의 참뜻에 대한 성찰이 자동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백낙청의 진단은 정확했다. 박정희의 구호 “잘 살아보세”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민소득 2만 불 달성”으로 변했다. 2만 불이 달성되면 다음에는 “국민소득 3만 불 달성”이 나올 차례인가. 오로지 ‘잘 먹고 잘 살기’가 이 나라 국민이 추구해야 할 유일무이한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배(腹)가 우리의 신(神)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백낙청이 그리는 한반도식 통일은 이 문제에 대한 성찰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분단고착론도 흡수통일론도 모두 배격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일류국가 대한민국’ 건설이 아닌 ‘한반도의 일류사회’ 건설이다. 현재의 남과 북 어느 쪽보다 훌륭한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젊은 세대의 창의성과 개방성과 진취성이 제대로 살아나는 사회이다. 그것은 국가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장으로서의 ‘사회’를 앞세우는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어느 한쪽 절반만 떼어서 일류의 삶,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만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그는 우리 삶의 질적 도약을 담보하는 통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위한 변명》김병후 지음|리더스북|312쪽|값 10,000원
남성은 여성과 달리 후천적인 자극과 학습에 의해 비로소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전형적인 남성의 뇌를 가진 남성은 타인의 정서적 마음을 읽는 능력이 애당초부터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남성은 자신이 아이였을 때의 아버지 모습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육아는 전적으로 여성인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13년간 부부, 가정 문제를 상담해 온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가 이 시대의 ‘아버지’에 대해 말한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과 자녀에 대한 ‘친밀감’의 형성이다. 친밀감이란 가족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이며, 이를 위해서는 ‘가족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능력이 ‘배려’다. 배려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아픔 마음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잘못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아버지’인 남성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생물학적 열등성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편의 속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아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버지학’ 또는 ‘남편학’ 교과서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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