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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번역은 반역인가-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by 안티고네 2006. 5. 16.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지은이) | 푸른역사
출간일 : 2006-02-10 / 12000원
반양장본 | 275쪽 | 223*152mm (A5신)
 

 번역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뜨거운 목소리 

  지난 2월말 경에 이 책을 읽고는 너무나 흡족하고 또 한편 안타까워서 한참을 생각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지냈다.

  사실상 '번역'이란, 평범한 책읽기를 하는 우리에게는 일상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일인데도 대체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읽고 만족스럽든 아니든, 원서를 구해서 볼 생각까지는 하기가 어려운 게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계속 읽다보니 나름대로 '번역'과 '번역가'에 대해서도 입장이 생겨서, 믿는 번역가도 생기고 어설픈 혹은 엉터리가 분명한 번역에 대해서는 '원본에는 대체 뭐라고 되어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어보기도 한다. 실제로 대조해보는 경우도 있는데, 가끔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번역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다. 번역은 사실상 이렇게, 내 책읽기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책을 읽고는 번역의 중요함에 대해서, 또 어이없게도 우리나라에서 번역을 얼마나 홀대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게 벌써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도 번역의 문제를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지, 지금까지도 김용옥이 제기한 그  문제들은 내게 번역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내 책읽기에도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십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우리나라에서 번역에 대한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나를 돌아보면, 당연히 거쳐야 할 번역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변변하지 못했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그러다 드디어 이 책, 본격적으로 번역의 중요함을 일깨우고 우리나라의 번역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이 책을 만나니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격이었다. 다행히 이 책은 번역을 하고 있거나 희망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의 독자에게도 다가올 만큼, 주제가 절박, 뚜렷하고 문장은 유려하며, 난해하지 않다. 번역에 대해 막연히 느끼고 있던 문제의식들이 장을 거듭할수록 선명해진다. 쪽수를 넘길 때마다, 그만큼 흡족했고 또, 현 상황은 안타까웠다.

  이 책은 많은 학자들에게, 혹은 번역을 하고 있거나 꿈꾸는 이들에게 텍스트로 주어질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지은이의 지적처럼, "모든 인류 역사의 문화 교류에서 번역은 보편적 선결 과제이다. 번역이 전제되지 않는 지적 활동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에 관련된 고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으면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 또한 이 세상 어느 곳에 존재하는 어떤 탁월한 사상, 유려한 문장도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나 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상 어느 문명이든 다른 문명과 처음 접촉할 때 가장 먼저 수행하는 작업은 바로 번역이라고 한다. 그 중요함을 깨닫고 투철하고도 열린 마음으로 그 작업에 임한 곳에서만 새로운 문명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그렇게 새로운 문명을 만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 또한 새로운 문명을 꽃피운 예가 제시되어 있다. 저자가 인용하고, 소설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 윌리엄 수사가 인용하였거니와, 번역의 시대인 12세기에 프랑스의 수도사 베르나르가 처음 했다는 말은 인류와 문명의 한 단면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지혜 가득한 말은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와 같아서, 그 어깨로부터 거인들보다 더 멀리 많은 사물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우리의 시력이 예민하거나 우리의 재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거인다운 위대함에 의해 지탱되고 고양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너무나 당연해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양해야 될 일이다. 이렇게 당연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얼마나 도외시되었나를 돌아보는 것, 또한 이 책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 중의 하나다. 책의 앞부분에서 번역의 중요함과 실제의 무게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애쓴 지은이는, 이어 우리나라 번역의 슬픈 자화상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그린다.

  "번역이 궁극적으로 정보의 대중화, 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때, 아무리 우리의 열악한 조건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런 중요한 작업을 경시한다는 것은 '지식인의 반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지은이는 깊은 어둠 속에서 그 어둠을 헤치고 빛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할 이들이야말로 지식인이 아니었던가를 각성시킨다. 어둠에 묻혀버린 지식인을 그 상황과 함께 이해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책의 상당 부분을 번역의 실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수준 미달의 번역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더라도 '번역'이라는 작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성, 즉 "원문에 대한 충실성이냐 텍스트의 심리적 의미에 대한 충실성이냐"하는 문제에 접근한다. 이러한 두 주장의 대립은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어온 번역 논쟁의 핵심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유명 번역가 이세욱의 번역에 대해 2003년 신문 지면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한 프랑스어 번역가 백선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번역에 대한 번역가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문제는 사실상 나에게도 번역의 딜레마로 여겨지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더욱 흥미로왔다.

  "번역에서는 원작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충실성'과 번역문의 '가독성'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번역에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다. 충실성을 희생하여 가독성을 높이느냐, 아니면 가독성을 희생하더라도 충실성을 기해야 하느냐의 기로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오래고도 내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역주를 필수적으로 둘 것을 역설하고 더불어 나름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142~2쪽)  번역자들 사이에 충실성과 가독성을 두고 성향이 갈라진다면 독자들 또한 성향이 다양하리라고 추정할 수 있으므로,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환경은 같은 원전을 번역한 다양한 책이 쏟아져 나와 주는 것이다. 독자들이 '골라 읽는 재미'를 누릴 수도 있는 상황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반문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고전 텍스트마저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우리의 척박한 현실에서 이런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지은이는 현실을 딛고 설 미래를 위해, 젊은 인문학도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말미에 지은이가 자신의 번역작업을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보여주는 부분도 이 책의 구체성을 높이는데 한 몫을 한다고 본다. 한 번역가의 진지한 고민을 더듬어보며 번역이라는 작업의 매력에도, 고난에도 생생하게 다가가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번역은 중요하다. 번역을 중요한 일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더불어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으로 독자로서 이 책을 만든 이에게 갚음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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