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300여명 뿐인데도 10여년간 <성서 조선>을 만들어 바른 신앙으로 이끌고, 민족혼을 일깨운 선구자. 일제때 수감된 상황에서도 “황국신민서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망국신민서사가 될 것”이라고 의연히 말했던 쾌남아. 시집가는 딸에게 단도 하나를 내주며 “친정과의 관계는 싹 끊고 길흉화복을 오로지 시댁과 함께 하라”던 단호한 선비….
김교신(1901~1945)은 비록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진면목을 아는 이들에겐 언제나 그리운 스승이었다. 그의 제자인 노평구(89)씨가 '성서조선' 글을 모아 1964~1975년 엮었던 <김교신전집>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복간됐다.
전집의 오류를 수정하고 좀더 보기 쉽게 풀어 <인생론>(1권)과 <신앙론>(2권), <김교신을 말한다>(별권) 등 3권을 먼저 출간했고, 앞으로 <성서개요>, <성서연구>, <일기> 등 8권을 연내에 출간할 예정이다.
김교신은 지금까지 널리 조명되지 못했다.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장애가 되는 인물에 대해 교회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던 `이단자' 속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경을 읽는 그곳이 교회라며, 무교회주의를 폈다. 그는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가 반대파에 축축되는 등의 병폐를 목격하고 실망하던 중 일본의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 강의를 들은 뒤 무교회주의자가 됐다.
그의 양정고 제자들의 회고는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당시 지리과목은 일본 지리였지만 우리는 우리나라 지리만 배웠다. 대고구려, 세종대왕, 이순신을 배웠다. 식민지교육 아래서 소경이었던 우리 소년들은 비로소 자신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국토가 넓지 못한 것을, 인구가 많지 않은 것을, 백두산이 높지못하고 한강이 깊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않게 되었다.”(류달영 서울대 명예교수)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내고 우리나라 최고의 선승으로 일컬어지는 서옹 선사도 최근 선시집 <물 따라 흐르는 꽃을 본다>에서 양정고보 재학시절 스승인 김교신의 가르침으로 비로소 정신세계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조연현 기자
http://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1/05/009000000200105181835003.html
<김교신전집> 1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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