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이신 송동호 목사님의 글과 저의 답글입니다.
송동호 목사님의 글
답답한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짐
교수님 안녕하시죠? 날씨가 참 무덥군요.
이제 캠퍼스도 방학에 들어갔지요.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십시요.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들이 생각나더군요.
1992년이었는데.. 당시 제가 이스라엘에서 성서역사의 필수과목이기에 성서고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을 듣기는 해도 그게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사실 갈바를 몰랐지요. 학기 말에 엄청난 과제물들로 허덕이고 있었는데 그 때 일본 친구가 도서관에서 뒤적이는 책을 보니 모두 일어로 된 책이더란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그런 전문 고고학 분야의 주된 택스트들이 일어로 벌써 10여년전에 번역되어 있었고 그친구는 공부하러 오기이전에 벌써 기본적인 이해들을 하고 있었다는 예기지요. 일본의 기독교 인구란 극히 소수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전문적인 성서 고고학 분야의 책들을 사고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고대어에 관한 주된 텍스트들이 다 일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 책 번역해 내면 출판사가 문닫을텐데... 그런데 투자했다는 것 아닙니까? 또 일본엔 그런 책을 찾으며 읽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지적 인프라의 차이를 현저히 느꼈습니다.
우리들에게서 책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당연합니다. 깊이 있는 독서와 연구가 없는데 책이 나옵니까? 또 누가 학자들이 연구해 내면 그 어려운 책을 읽기나 합니까? 고작 교재로 몇권 정도 팔리지요. 출판사가 그 책 출판에 덤빌리도 없구요. 손해보고 그런 책을 왜 냅니까?
외국 젊은 학자들은 처음에는 모자란듯 시작하지만 가면 갈수록 더 권위있고 깊이있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더욱 영향력있는 학자들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학교나, 연구소나 재단들이 그들로 연구하도록 밀어준다는 거지요. 또 그들이 연구한 분야에 대해 학문적으로 함께 하고 도와줄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영국에 있을때에 한 교수님이 묻더군요. 한국 학자들은 공부할 때는 세계의 많은 인재들과 겨루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데... 왜 그뒤에 계속되는 연구결과와 책이 없는지? 정곡을 찌르더군요. 부끄럽더군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외국에서 연구하고 젊은 교수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강단에 서면 학생들이 뿅(?)가지요. 그런데 후에 가면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고 심지어 학교내의 정치적인 묘한 헤게모니 쟁탈에 신경을 빼앗기고 결국 어용교수로 몰리지 않습니까? 학자들이 설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연구할 자료의 빈약, 연구할 시간의 부족, 함께 할 학문적인 동료들이 없다고 하지요. 밀어주는 후원자도 없구말입니다. 애구 가슴 아프네요. 언제 우리가 일본을 따라갈까요?
저희들이 신학교 다닐때에 우리의 신학을 복사신학이라고 했습니다. 번역한 책외엔 신학적인 책들이 없고, 교수님들도 외국에서 강의들은 내용 그대로 복사하다시피하여 강의하시니까요. 강의가 하나 둘이어야 연구하여 뭘 새로운 것을 준비하지요. 답답하지요. 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요즈음은 조금 은 나아지고들 있다하는데 모르지요??
외국에는 기독교 관련, 경건서적, 신학적인 책들도 많은 경우 그 필자들이 목회자들입니다. 죤스토트도 신학자지만 교구 목사, 목회자였지요. 그런데 그들이 책을 쓴단말입니다. 두터운 필진들이 지금도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영국교회가 문닫는다 닫는다 해도 우린 지금 깊이있는 책들을 영국에서 가져다 번역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들은 책을 쓰고 있습니다. 쉽게 영국교회가 문닫지 않습니다. 영국교회의 두터운 영성, 그 힘은 무시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특별히 한국의 목회자들은 설교집외에는 책을 낼 시간이 없습니다. 글 쓸 시간이 없습니다. 영국의 제가 몸담고 있던 한 교회 목회자는 목사님이 책쓰신다고 여름에 3개월을 휴가를 가시더라구요. 우리는 그런 본을 보다가는 목사가 쫓겨난다잖습니까요. 이게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저도 모르겠네요. 조금 흥분한 것 같죠! (이런 이야기 저도 쑥스럽습니다.)
이제 그만 갑니다.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먼 장래보고 교회들이 나서서 이 일에 사명을 가지고 사람을 키우고 투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도제목입니다.
안녕히!
박상익의 답신.
송동호 목사님, 정말 큰일이군요.
송동호 목사님, 귀한 글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저는 제 전공 분야를 통해서만 한국 학계 동향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은근히, 송 목사님께서 신학을 하시는 입장에서, "우리 쪽은 그렇지 않다, 지적 인프라가 제법 잘 돼 있다", 뭐 이런 말씀이라도 해 주셨으면 하고 기대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로군요...
말씀하신 내용 하나 하나가 어쩌면 제가 전공 분야에서 평소 느꼈던 것과 그리도 똑같은 지요? 한국 현실이 정말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입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학자들이 처음에 대단한 것처럼 보이다가, 몇 년 못 가서 이른바 학내 폴리티킹에 휘말리고, 아까운 나이, 한창 공부할 나이를, 이런 저런 보직 맡느라 허망하게 날려 버리는 경우를 저도 제 친구들 사이에서 익히 보았습니다.
학문적 동료가 없다는 말씀도 제게는 참 와 닿는 말씀입니다. 서양사를 전공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어찌하든 신앙과 전공을 합금해 보려고 해왔고, 저도 많이 부족한 사람인지라, 저와 같은 지향(志向)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내어 함께 고민을 나누어보려 했지만, 아직 그런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 동료를 구하는 일은 오래 전에 포기했습니다. 나 하나라도 작은 돌멩이 하나 쌓는 일이나마 하자, 뭐 이런 생각으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제 칼럼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는 어차피 학문의 층이 얇아서(얇기만 하면 좋겠는데,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렸습니다. -.-;; ),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만주 벌판에서 독립 운동하는 기분으로 각개약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밀턴의 개인주의 신앙"(즉, 독립신앙)이라는 칼럼도 언젠가 올린 적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개인주의적인, 독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앞으로 성경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송 목사님께 자주 찾아가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역사학이 학문 특성상 지독하게 <인간적>인 학문이 돼놔서, 제가 신앙과 학문을 병행하려다가 여의치 않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반 평신도들도 처지는 제각기 다르지만 다들 신앙과 직업에 관련하여 고민을 안고 있을 줄 압니다. 세상일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널리 이해하시고, 그분들에 대해 (물론 저도 포함해서) 정말이지 실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격려의 말씀을 많이 주시기 빕니다.
심사가 몹시도 답답하던 차에, 모처럼 제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를 만나, 송 목사님께 긴 말로 중언부언하였나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상익 드림.
송동호 목사님의 글
답답한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짐
교수님 안녕하시죠? 날씨가 참 무덥군요.
이제 캠퍼스도 방학에 들어갔지요.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십시요.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들이 생각나더군요.
1992년이었는데.. 당시 제가 이스라엘에서 성서역사의 필수과목이기에 성서고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을 듣기는 해도 그게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사실 갈바를 몰랐지요. 학기 말에 엄청난 과제물들로 허덕이고 있었는데 그 때 일본 친구가 도서관에서 뒤적이는 책을 보니 모두 일어로 된 책이더란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그런 전문 고고학 분야의 주된 택스트들이 일어로 벌써 10여년전에 번역되어 있었고 그친구는 공부하러 오기이전에 벌써 기본적인 이해들을 하고 있었다는 예기지요. 일본의 기독교 인구란 극히 소수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전문적인 성서 고고학 분야의 책들을 사고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고대어에 관한 주된 텍스트들이 다 일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 책 번역해 내면 출판사가 문닫을텐데... 그런데 투자했다는 것 아닙니까? 또 일본엔 그런 책을 찾으며 읽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지적 인프라의 차이를 현저히 느꼈습니다.
우리들에게서 책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당연합니다. 깊이 있는 독서와 연구가 없는데 책이 나옵니까? 또 누가 학자들이 연구해 내면 그 어려운 책을 읽기나 합니까? 고작 교재로 몇권 정도 팔리지요. 출판사가 그 책 출판에 덤빌리도 없구요. 손해보고 그런 책을 왜 냅니까?
외국 젊은 학자들은 처음에는 모자란듯 시작하지만 가면 갈수록 더 권위있고 깊이있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더욱 영향력있는 학자들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학교나, 연구소나 재단들이 그들로 연구하도록 밀어준다는 거지요. 또 그들이 연구한 분야에 대해 학문적으로 함께 하고 도와줄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영국에 있을때에 한 교수님이 묻더군요. 한국 학자들은 공부할 때는 세계의 많은 인재들과 겨루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데... 왜 그뒤에 계속되는 연구결과와 책이 없는지? 정곡을 찌르더군요. 부끄럽더군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외국에서 연구하고 젊은 교수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강단에 서면 학생들이 뿅(?)가지요. 그런데 후에 가면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고 심지어 학교내의 정치적인 묘한 헤게모니 쟁탈에 신경을 빼앗기고 결국 어용교수로 몰리지 않습니까? 학자들이 설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연구할 자료의 빈약, 연구할 시간의 부족, 함께 할 학문적인 동료들이 없다고 하지요. 밀어주는 후원자도 없구말입니다. 애구 가슴 아프네요. 언제 우리가 일본을 따라갈까요?
저희들이 신학교 다닐때에 우리의 신학을 복사신학이라고 했습니다. 번역한 책외엔 신학적인 책들이 없고, 교수님들도 외국에서 강의들은 내용 그대로 복사하다시피하여 강의하시니까요. 강의가 하나 둘이어야 연구하여 뭘 새로운 것을 준비하지요. 답답하지요. 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요즈음은 조금 은 나아지고들 있다하는데 모르지요??
외국에는 기독교 관련, 경건서적, 신학적인 책들도 많은 경우 그 필자들이 목회자들입니다. 죤스토트도 신학자지만 교구 목사, 목회자였지요. 그런데 그들이 책을 쓴단말입니다. 두터운 필진들이 지금도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영국교회가 문닫는다 닫는다 해도 우린 지금 깊이있는 책들을 영국에서 가져다 번역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들은 책을 쓰고 있습니다. 쉽게 영국교회가 문닫지 않습니다. 영국교회의 두터운 영성, 그 힘은 무시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특별히 한국의 목회자들은 설교집외에는 책을 낼 시간이 없습니다. 글 쓸 시간이 없습니다. 영국의 제가 몸담고 있던 한 교회 목회자는 목사님이 책쓰신다고 여름에 3개월을 휴가를 가시더라구요. 우리는 그런 본을 보다가는 목사가 쫓겨난다잖습니까요. 이게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저도 모르겠네요. 조금 흥분한 것 같죠! (이런 이야기 저도 쑥스럽습니다.)
이제 그만 갑니다.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먼 장래보고 교회들이 나서서 이 일에 사명을 가지고 사람을 키우고 투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도제목입니다.
안녕히!
박상익의 답신.
송동호 목사님, 정말 큰일이군요.
송동호 목사님, 귀한 글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저는 제 전공 분야를 통해서만 한국 학계 동향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은근히, 송 목사님께서 신학을 하시는 입장에서, "우리 쪽은 그렇지 않다, 지적 인프라가 제법 잘 돼 있다", 뭐 이런 말씀이라도 해 주셨으면 하고 기대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로군요...
말씀하신 내용 하나 하나가 어쩌면 제가 전공 분야에서 평소 느꼈던 것과 그리도 똑같은 지요? 한국 현실이 정말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입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학자들이 처음에 대단한 것처럼 보이다가, 몇 년 못 가서 이른바 학내 폴리티킹에 휘말리고, 아까운 나이, 한창 공부할 나이를, 이런 저런 보직 맡느라 허망하게 날려 버리는 경우를 저도 제 친구들 사이에서 익히 보았습니다.
학문적 동료가 없다는 말씀도 제게는 참 와 닿는 말씀입니다. 서양사를 전공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어찌하든 신앙과 전공을 합금해 보려고 해왔고, 저도 많이 부족한 사람인지라, 저와 같은 지향(志向)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내어 함께 고민을 나누어보려 했지만, 아직 그런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 동료를 구하는 일은 오래 전에 포기했습니다. 나 하나라도 작은 돌멩이 하나 쌓는 일이나마 하자, 뭐 이런 생각으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제 칼럼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는 어차피 학문의 층이 얇아서(얇기만 하면 좋겠는데,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렸습니다. -.-;; ),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만주 벌판에서 독립 운동하는 기분으로 각개약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밀턴의 개인주의 신앙"(즉, 독립신앙)이라는 칼럼도 언젠가 올린 적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개인주의적인, 독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앞으로 성경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송 목사님께 자주 찾아가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역사학이 학문 특성상 지독하게 <인간적>인 학문이 돼놔서, 제가 신앙과 학문을 병행하려다가 여의치 않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반 평신도들도 처지는 제각기 다르지만 다들 신앙과 직업에 관련하여 고민을 안고 있을 줄 압니다. 세상일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널리 이해하시고, 그분들에 대해 (물론 저도 포함해서) 정말이지 실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격려의 말씀을 많이 주시기 빕니다.
심사가 몹시도 답답하던 차에, 모처럼 제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를 만나, 송 목사님께 긴 말로 중언부언하였나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상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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